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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04. 2019

수능을 앞둔 딸에게

부디 서두르지 말고....

딸의 얼굴에 새파란 날이 서있었다.  


밤늦은 시간, 딸의 얼굴을 보니 예리한 칼날 같다. 다시 자세히 보니 파리한 안색일 뿐인데. 한 손에는 커다란 커피잔과 초콜릿을 들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의 가을밤. 등에 맨 가방은 한없이 무겁고 초조함은 임계점을 넘어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날. 오늘따라 푸르게만 보이는 야속한 가을 하늘은 티 없이 맑기만 하다.


이미 카운트 다운은 시작되었다. 수능일까지 하루의 착오도 없이 중지할 이유도 없이 딸의 시험일자는 다가올 것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 감정이 변하고 조울이 교차하는 경험을 할 텐데. 어쩌면 자신의 인생살이 중 첫 번째 선택의 관문일 것인데. 왜 그렇지 않을까?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생에게는 부모의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가신 잔소리나 귀에 박힌 부모의 애정 어린 하소연으로 들릴 것이다. 여러 번 들으면 짜증 날 수밖에 없는. 지금 딸의 감정이 그러하듯이.

    

그 때문에 거실이나 식탁에서 마주칠 때는 생활영역이 서로 다른 생명체인 것처럼 비껴 지나친다. 서로가 애써 피해 가며, 서로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분위기를 맞추어가는 이차원적인 관계. 마치 사회생활에서 서로 조심하며 가식의 매너를 보이는 회사의 동료 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딸에게 건네는 어색한 말 한마디.


"밥은? 어떤 걸 먹었니?"

"응, 김밥", 혹은 "대충 먹었어, 떡볶이"

"피곤하지는 않니?"
"응, 커피 마셨어"

"준비는 잘되고?"

" ....,   ......"


긴 문장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아닌 단문과 단어로만 이어지는 특이한 대화. 서로 언어가 달라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는듯한. 드라마에서 본듯한 다정한 대화는 시도조차 못하고 머릿속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마는.  

 

아빠 입장에서는 하고픈 말들이 진짜 많은데. 진심을 담아 "고생한다"는 말도,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으라"는 말도 하고 싶은데. 그 말들은 목구멍에 걸려 계속 정체 중이다. 그 역시 딸의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다 보면 냉정한 삶의 진실에 베이지 않는 이가 누가 있을까? 그 삶의 진실은 누구의 편도 아닌 냉혹한 킬러와 같지 않던가. 우리는 비로소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구가 이해가 된다. 냉정하고 계산적인 그러면서도 가끔은 우리를 배신하고야 마는, 그게 우리네 인생의 숨겨진 진실이 아니었던가.


아빠는 생각한다. 딸의 노력에 대해 자신의 인생이 배신하지 않기를. 그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은 애잔할 수밖에.




고3 딸은 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추석명절 귀향길에 올랐을 때 수능을 준비하는 고3 딸은 홀로 남았다. 홀로 밥을 먹으며 독서실에서 동병상련의 친구들과 새벽이 오도록 커피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허기는 쉽게 오지 않았을 테고 잠 못 이루는 밤 컵라면에서 잠시 위안을 찾고, 친구들과 메마른 미소를 교환하며 며칠을 보냈을 것이다.


잠시 집을 비우고 고3 수험생을 남기고 떠나는 부모의 마음도 편히 않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 끼니는 잘 해결했는지, 가족이 없는 빈집에 홀로 들어섰을 때 외로움이 찾아오지 않았는지, 불안감에 잠 못 이루는 시간이 되지 않았는지. 부모의 마음은 집을 벗어나지 못했다.


딸이 앞두고 있는 수능시험은 대학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험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분의 진실이다. 그마저도 한참 시간이 흐른 이후에나 진실을 안다는 것이 문제지만. 아직 고등학교 3학년의 눈과 귀에는 그 진실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의 불안감 때문에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그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없어 더 답답하고 속 터지는 것은 아빠의 마음이다.


알고 보면 우리의 삶은 늘 현재 진행형이고, 어떤 미래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삶의 진실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수능 저 득점이나 실패가 한 번의 기회를 놓쳤거나 잃은 정도의 의미일 뿐인데. 우리는 그날의 의미를 너무 과장되게 부여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는 어떤 실패도 어떠한 실수도 용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막상 눈앞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후회와 자책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그런 시간마저 안타까워하는. 그런 현실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 없이 나약한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다양한 기회와 여러 번의 실수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온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래도, 딸에게 이런 말은 하지 못한다.


"이번만 참으면 평생 고생 안 할 텐데. 이번 기회가 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야."


그동안 고등학생이면서도 천하태평이던 딸을 보고 있노라면 아빠의 걱정은 태평양을 건넜다. 평소에 공부하지 않고 뒤늦게야 공부에 열중이던 딸의 노력을 폄하하고 우려했던 아빠의 지난날을 뒤돌아 본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딸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안 하느냐"라고 얘기했던 아빠의 속좁음을 반성한다. 가고 싶은 대학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님에도 큰 문제라고 인식했던 것을 역시 반성한다.


그런 딸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을 강요하는 이 사회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하며 살펴봤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자신이 살아가고픈 삶보다 보이고 평가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냉정히 바라봤어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런 세상의 기준에 딸이 맞춰가기를 바랐던 꼰대 같은 아빠의 입장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


아빠도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방법 중 겨우 몇 가지를 알고 있을 뿐인데. 그럼에도 마치 전부를 아는 것처럼 딸의 인생 여정에 불필요하게 관여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살펴볼 것이다. 고3인 딸의 준비과정에 고통과 후회가 따를지라도 이것 역시 하나의 통과의례이며 성장통이라는 것을 말해줄 것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것 또한 삶의 즐거움의 하나로 여기며 지나가길 바란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우리 삶의 주 작은 부분에 불과할 뿐인데. 그런데도 마치 우리의 인생 자체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시기나 큰 문제로 생각하는 아빠 스스로를 경계할 것이다. 동시대를 함께하는 딸에게 "부담 갖지 말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훌훌 털어버리라고" 말하고 딸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볼 것이다.


고3인 딸이  '부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할 것이다.


방랑자 시인 박노해는 노래한다.  

디레 디레 잘 레 만느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부디 서두르지 말고 게으르지도 말아라  
모든 것은 인연의 때가 되면 이루어져 갈 것이니"  

박노해, 사진 에세이 <다른 길>, 디레 디레 잘 레 만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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