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아이들이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진정한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은?(복수정답 가능함)
① 엄마 찬스(돼지엄마 포함)
② 아빠 찬스(선생님 아빠 포함)
③ 고가의 교육컨설팅과 학종 찬스
④ 사이좋은 스펙 품앗이 찬스
⑤ 선행학습 및 과잉 사교육 찬스
이 어려워 보이는 문제의 답은 무엇일까?
교육제도(혹은 철학)에 관한 개인의 성향이나 각 가정의 여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 선택이 궁금하다. 1번부터 5번까지 모두 고를 수도, 5가지 중 한두 가지를 고를 수도, 정답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정답으로 보이는 지문의 개수를.
#2.
부모 찬스는 오래된 얘기다.
숱한 '부모 찬스'에 입시를 앞둔 학생들의 박탈감 호소 뉴스는 오래되었지만 최근 등장한 기사거리다. 이는 입시결과로만 평가되고 대학의 서열로 인정받는 결과지 상주의 사회풍토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들의 사회경제적인 지위나 경제력을 이용한 특별한 혜택은 부모들의 헌신으로 눈물겹게 포장되고 미화된다.
그 과정의 불공정함이나 차별적 혜택이 제대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부모나 아이들의 개별적인 노력의 문제로만 알려져 있다. 강남 입시 불패, 대치동과 목동 신화의 이면에는 이러한 부모들의 파격적인 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황새의 걸음으로 특별한 사회경제적 우위를 무기로 삼아 대부분의 선량한 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좌절을 남긴다. 패배의 흔적은 아주 오랫동안 남아 다시 그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그중 일부는 뱁새의 걸음으로 황새를 좇아가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큰 낭패를 맛보기도 한다.
교육자본의 축적은 교육시스템을 통해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세습된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행은 소위 있는 자들이 만들어놓은 시크릿가든이다.민주화되지 못했던 사회에서의 덩치를 키워왔던 자본권력이 민주화 이후에도 더욱 견고하게 자리매김을 한 탓이다. 은밀하게 진행된 이들의 자본을 통한 사회적 지위의 세습화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그 존재의 정당성까지 부여받았다.
이러한 세습의 부당성을 견제해야 할 언론은 공공성과 비판능력을 상실하고 새로이 만들어진 엘리트 집단의 충실한 대변자가 되었다. 이들은 기업집단, 여의도와 권력의 심장부에서 실질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기망하면서도 외형상 선량한 정치경제적 집단으로 성장하였다. 견제받지 않는 기득권의 존재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소위"넘사벽"이었고, 그들만의 리그는 더욱 은밀히 진행되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기회의 공정에 대한 논의는 점점 사회적 어젠다에서 멀어졌고, 성장 위주의 사회풍토에서는 오롯이 성취결과만 평가되었다. 출발선과 과정에 대한 공정성 논의는 교육자본의 세습 집단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늘 결과의 공정과 엘리트 사회의 우수성을 전파하였다. 그들이 이끌어가는 사회가 공공선이고 공익의 추구를 위한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다수의 국민이 믿도록 광고하였다.
#3.
부모 찬스는 부모의 애정과 헌신인가?
도곡동의 숙명여고 사건과 언론에 드러난 일부 사회지도층의 엇나간 자녀사랑은 부모의 애정과 헌신으로 잘 포장된 신파극이다. 빙산의 일각인 이들은 어쩌다 들통난 극히 재수 없는 일례에 해당할 것이다. 그들 자신들도 대부분 드러나지 않은 운 좋은 주변을 돌아보며 "왜 우리만 갖고 그래" 하며 자조할 것이다. (들통나지 않은) 나머지들은 은근히 좋아하면서도 불똥이 자기들에게 튀지 않게끔 숨죽여 시간이 지나가지를 바랄 것이다. 어차피 국민들의 비난의 시간은 레테의 강인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므로.
부모 찬스로 인해 좋은 환경에서 뜻밖의 성적을 얻고 소위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이들을 보는 대부분의 부모와 아이들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공정해야 할 그들의 경쟁이 아이들 '자신의 노력'이라는 대등한 무기로 승부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 순간, "부모 찬스"라는 무림 비급과 비장의 무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노와 자조가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특별한 경험을 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부모 찬스로 인한 얘기들은 수면 아래서 숨어있어 일반인들이 알 수도 없는 구조라는 거다. 인사청문회 시즌이나 부모 찬스가 범죄화 되어 뉴스에 회자되지 않는 이상 그 연결고리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선량한 부모와 아이들은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지 여부도 모른 체 생업과 학업에 열중한다는 것이다. 죽도록 일하고 공부하며.
이런 부모 찬스는 부모들의 경제력을 통해 강남 돼지엄마, 고액의 교육컨설팅, 고액과외 등 그 형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결국 부모 찬스를 통한 아이들과 나머지 아이들 간의 경쟁은 그들의 경쟁이 아니다. 부모들 간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신분에 따른 또 다른 경쟁라운드에서의 전쟁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들의 경쟁이나 학업성취가 아이들에게서 부모의 문제로 확전 될 때 경쟁의 공정성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서버린 것이다.
#4.
우리는 부모 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
부모 찬스로 인한 교육 세습의 문제는 그 자체도 문제거니와 이를 단순한 사회경제적 차이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비판적 시각을 못한다는데 있다. 특히 능력 지상주의와 결합된 결과지상주의는 대학 입학이나 취업의 차원을 일부 계층의 문제나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환시켜버린다. 이로 인해 이들 경쟁에서 뒤떨어지거나 배제된 이들은 사회구조적인 비판적 시각을 갖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탓하거나 자신의 부모(능력)를 원망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패배의식이 쉽게 자리 잡고 비판능력이 봉쇄되며, 결국 나약한 개인들은 제도에 의해 현실에서 탈락된다.
부모 찬스로 인한 교육자본의 세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대로 나눌 것인가?
교육 세습의 문제는 잠시 수면 위로 올라온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은밀히 진행되는 속성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견고하게 제도화될 것이다. 아무리 교육과정에서의 공정성을 외치더라도 부모들의 의식이나 사회 전반적인 혁신이 없이는 그 진행과정을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성공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놔두고 공정한 경쟁을 권장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신분 차이에 따른 부모 찬스의 제도화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교육의 모든 과정은 공정과 평등의 원칙이 지배하여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교육과정을 통해 자식에게 세습되는 것은 새로운 신분제도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의도가 그들의 생각대로 전개가 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형적인 제도화에 비판적 시각을 갖는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하다. 또한 개인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깨어있는 언론이 민주주의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모 찬스와 교육 세습의 문제, 교육과정에서 공정성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하고 그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부모 찬스와 신분세습을 원하는 부모들의 대오각성과 반성을 촉구한다. 아이들은 기회와 과정의 공정성이 보장된 경쟁 라운드에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능력대로 실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경쟁의 주도권을 아이들에게 넘기고 교육 라운드에서 퇴장하시라.
우리 아이들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납득 가능한 "공정한 사다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때, 교육제도 전반에 공정성은 자리 잡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아빠 카드로 치킨과 떡볶이를 배달시키는 아빠 찬스를 누리고 산다. 단지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