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제이자 결과로 헌법 제1조 제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은 모두 헌법 제1조를 실현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4. 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 민주항쟁은 모두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10년의 민주정부 이후에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다시 본궤도에 복귀시켜 놓은 것이 2016년의 촛불혁명이었다.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절실했었고 우리의 후대들에게도 반드시 물러주어야 할 국가의 모습이 오롯이 이 조문에 담겨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한때 장식적 헌법에 가까웠다. 권력은 극소수로부터 나왔으며 국가기관은 그 극소수를 위해 봉사했던 치욕의 역사가 있었다. 우리 민주화의 역사는 제대로 된 발전과정인 정반합이 아닌 후퇴와 퇴행을 거듭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2019년 우리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왜 이 질문을 다시 하고 있는 것인가?
#2.
대한민국은 "왜", "민주공화국"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문장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국가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원하는 민주공화국은 그냥 "개돼지처럼 배부른 사회"가 아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되어야 한다.일부 소수 기득권자와 기업가들의 품위를 위한 나라가 아닌 대다수 국민이 "사람의 품격"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우리 국민을 향해 "민중은 개돼지"라 불렀던 고위공직자가 있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국민이 주인이 되거나, 국민이 민주공화국의 일원으로서 사람의 품격을 지니고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었다. 국민을 우롱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여전히 우민(愚民)이었고 피치자(被治者)에 불과했다.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그런 야만과 우롱으로부터 자유스러워졌으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과 우리의 품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야 민주시민의 자격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국가나 국가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 이념이 다름에도 박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시민의 목소리가 국회, 청와대와 사법부를 향해 분출되었고, 다양한 국가기관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주인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또 다른 시험대에 서있다.
대한민국과 그 국가기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국가와 국가기관의 모든 정치행위와 정책의 입안 및 집행은 국민의 위임을 받아하는 대리행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국민의 위임에 의한 대리행위를 벗어나려는 일부 국가기관의 정치적 행위가 눈에 띈다.
모든 국가기관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만 행사해야 하며, 그 권한마저도 국민의 기본권과 다른 국가기관의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는 하부 국가기관이 국회의원이나 국민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만이 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를 하려는 것은 심각한 권한 남용이며 국민의 위임을 벗어난 행위다.
#3.
모든 국가기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그 기관 자체를 위해 존속할 수는 없다.
국회가 입법행위와 국민의 대의기관이기보다는 그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나라는 입법만능주의에 빠진 오류의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당파적 욕망으로 인해 국회의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정쟁의 일상화로 정치와 국민은 실종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사법부가 사법부의 독립이나 좋은 재판보다 재판하는 구성원인 판사들 개인을 위해 존재할 때, 그 나라는 사법 만능주의에 빠진 사법 독선의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재판이 정치적 행위를 목적으로 하거나 정치세력과 결탁하게 되어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게 된다.
행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기보다 그 기관 자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할 때, 그 나라는 집행 독재의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행정부의 집행 행위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정치적 배분을 통한 예산 오남용 행위와 집행권한 남용으로 공공선을 저버리게 된다.
민주공화국 하에서 삼권분립은 그 자체보다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여야 한다. 입법부, 사법부와 행정부가 본연의 헌법적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위에서 말한 독선과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 나라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때 모든 권력의 주체인 국민은 이것들로부터 소외된다.
국가기관이 헌법이 부여한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권한을 남용할 때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에서 언급한 "사회는 어느 때 망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소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상황이 되면 결국 국민이 권력의 시원적인 주체로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시민참여는 민주체제에서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국가기관이 제 역할을 망각하고 괴물이 되기 전에 시민의 참여를 통해 공공의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국가는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기 위해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원할 때, 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 그들의 권력과 권한은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의 검찰의 수사관행과 관련된 혼란은 단순히 "검찰개혁의 문제"가 아닌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에 따른 "국가정상화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