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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Dec 15. 2022

누가 뭐래도, 행복은 엥겔지수를 넘어서 온다

학교에 다녀온 초등 5학년 막내가 묻는다. "아빠 우리집 엥겔지수는 어떻게 돼? 에는 그게 낮을수록 좋다고 하는데..."  막내랑 계산기를 두드리며 계산을 시도했으나, 곧 난관에 봉착했다. 가계부를 쓰지 않다 보니 식료품 생활비 계산이 잘 안 된다는 거다.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엥겔지수>는 일정 기간 가계 소비지출 총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로서, 가계의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 엥겔에 따르면, 소득이 오를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엥겔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엥겔에 의하면 소득이 증가할수록 식료품비 비율이 줄어들어야 한다. 이는 소득이 물가상승률이나 소비욕망보다 계속적으로 증가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득 대비 물가상승률이 역전되었을 때는 이러한 법칙은 무용지물이 된다. 좀 더 그럴듯하고 근사한 먹거리에 대한 욕망도 수그러지지 않는다. 자제와 절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숨겨져 있을 뿐이다. 당장 내 자신과 우리 주위를 살펴보자.


소득 상승에 대한 욕망은 하늘을 찌를듯하지만, 통장의 현실은 늘 땅바닥에 붙어있다. 경제적 신분상승이라는 중력을 이겨내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터무니없이 많이 벌지 않는 이상 엥겔이 생각하는 것만큼 엥겔지수가 하락하지 않는다. 극히 한정된 일부만 그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객관적 통계상으로도 프랑스처럼 외식문화가 발달된 국가는 평균 엥겔지수가 높게 나온다. 우리나라도 외식 소비성향을 보면 비슷한 패턴으로 가지 않을까.


어디로 여행을 가든, 처음에는 풍경과 볼거리가 기억에 남다가, 결국에는 혀가 기억하는 음식만 남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리 기억의 한계 문제가 아니고, 그만큼 먹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성패는 먹거리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별 인생 맛집을 많이 알수록 여행이 풍부해진다. 미슐랭 스타가 괜히 유명해진 게 아니다.


목표로 하는 시험 합격이나 승진을 했을 때도 그 성취에 대한 만족은 잠시. 그다음 수순은 반대급부로 부여되는 먹거리 등급의 상승이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권력이나 경제적 부를 가져도 그로 인한 성취감은 바로 식탁의 메뉴와 술병의 라벨 변화로 이어진다.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누군가에게, 왜 사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하지... 살기 위해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전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후자는 아무래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삶과 행복의 근원은 먹고 마시는 것에 있다. 나와 내 가족이 먹고 마시는 것에서 개인의 삶과 행복의 총량이 결정된다. 이것은 속됨이 아니라 본능이자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우 먹는 날, 고급 호텔 뷔페 가는 날, 일식 오마카세 가는 날을 애써 정할 필요가 없다. 잘 먹고 좋은 것을 먹는 것은 특정 음식이나 공간에 제약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의 된장찌개와 나물반찬, 저녁 식탁의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늦은 밤의 라면에서도 늘 행복은 존재했었다. 가족들과 경쟁하며 먹었던 비 오는 날의 부추전과 김치전, 친구들과 수다스러웠던 분식집의 떡볶이와 순대, 처음 먹고 놀랐던 비후가스 돈가스... 에도 추억과 함께 행복이 담겨있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행복은 '누구랑 무엇을 먹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불편한 회식자리에서 고가의 성찬(盛饌)을 즐겨도 행복지수가 올라가지 않고, 업무상 먹어야 하는 정찬(正餐) 요리도 즐거움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것들에는 가장 소중한 "누군가"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엥겔지수에도 그 "누군가"가 빠져있지 않을까 싶다.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엥겔지수의 적절한 상승은 밥상의 품격과 행복지수를 올리는데 큰 도움을 준다. 통장의 잔고를 늘리려는 노력도 의미 있지만, 입맛에 맞는 메인 메뉴와 반찬 가짓수를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끼를 대충 때우면 소중한 한 끼를 버리는 것이 된다. 가끔은 소고기를 굽고 회를 떠 오자.


하여, 아이들 성적은 내려가고 엥겔지수는 올라가더라도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내려간 것들은 언제든 올라올 때가 있고, 올라간 것들은 언제든 내려올 기미를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맛있는 음식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가족들의 미소 속에서 행복의 진면목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반찬 투정하는 가족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겠다.


우리 삶이 가진 서사(敍事)는 무겁게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네 주방에서 식탁에서 장바구니 속에서 가볍게 만들어진다. 사회적 외피나 형식을 통해 성취된 많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덧없이 사라진다. 그것들은 바닷가 모래성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다. 어떤 여행지의 기억처럼 우리의 머리와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들은... 오손도손 했던 따뜻한 밥상의 기억,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정겨운 대화, 혀끝 미뢰에 남아있는 아스라한 음식의 추억들.... 뿐이지 않을까? 문득 행복은 어떻게 올까, 우리집의 행복론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봤다.


행복은 혼자서 오지 않는다.

... 잘 먹고사는 것과 함께 온다.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 맛있는 음식과 음료에 떠밀려 온다.

행복은 한 번만 오지 않는다.

... 수많은 먹거리와 함께 계속 반복적으로 온다.


그렇다. 우리집 행복론에 따르면, 행복은 엥겔지수를 넘어서 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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