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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Sep 12. 2019

추석은 더 가벼워져야 한다

소풍증후군이라는 말은 없다.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생 대학생들까지도 그날을 기다린다.  전날 밤을 하얗게 지새워도 당일 하루는 피로는커녕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소풍날의 키워드는 기대와 설레임이다. 직장 내 야유회가 아닌 이상.


명절증후군은 실체가 있는 실존의 단어다.

남녀 불문하고 일 년에 두 번 느닷없이 앓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 치유된다. 그 후유증으로 인해 회복불능의 상처를 받는 이들도 있다. 누구나 싫어하는 휴일 당직근무를 서로 자원한다는 새로운  풍속도도 마련되어 있다. 명절이 끝나면 가정법원의 이혼신청 접수대의 대기표가 줄지 않는다는 뉴스와 함께.


귀성과 귀향의 고단함은 기차표를 예매하며 시작해서(거의 실패한다는 게 문제지만) 도로 위 주차장에서 끝을 본다. 300킬로로 달리는 KTX에서 입석은 그나마 양반이고, 10시간 넘는 장거리 운전이 당연한 일로 치부된다. 고단함이 그리움을 넘어서는 것은 금방이다.


모처럼 모인 형제자매들도  평소에 단절된 대화가 어색하기만 하다.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여러 잔의 술잔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잠수해있던 지난 세월의 서운한 감정이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대책이 없는 순간이다.


서로 피를 나누지 않은 가족 간의 서먹서먹함은 어찌할까.

형제자매는 물론 며느리와 사위부담감은 새내기 직장인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무색하다. 서로가 자주 마주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며느리는 부엌에서, 사위는 티브이 앞에서 어색함을 달랜다. 그것도 잠시 스치듯 지나가서 다행이긴 하지만.


명절이 되면 단골 뉴스 중 하나. 어떻게 서로를 부를까의 문제가 남녀평등 문제와 더불어 등장한다. 집집마다 서방님, 아가씨, 형님들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ㆍㆍ.  한국말은 어렵고 호칭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현재의 상식이 고루한 관념을 넘어서지 못한 까닭이다. 호칭의 이상함으로 인한 갈등의 씨앗은 어디에 뿌리를 내릴까.


우리의 명절은 너무 무거워져 있다. 담을 수 있는 것보다 그럴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적인 문화라는 이유로 정을 넘어선 행위들. 그 사이에서 마땅히 정을 누려야 할 사람들은 소외된다. 밥상 위에 차려진 성찬과 말잔치(혹은 아무 말 대잔치)는 배부름보다는 정신적 허기를 부른다.


5백 년 전의 관념이 현재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제례문화에 어떤 비판도 비난도 허용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허심탄회하게 이를 하다 보면, 막돼먹은 ㅇㅇ씨가 되거나 심지어 오랑캐의 아들이라는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모처럼 모인 가족은 한 끼를 먹기 위해 하루를 고생하고, 전 부치느라 고생한 이들은 허리와 마음에 생채기가 생긴다. 애정을 나눈 순간보다 다른 부정의 감정이 힘을 키우는 연례행사를 어떡해야 할까?


이제는 이런 부담을 버려야 되지 않을까?(몽땅이 아니라 선별해서). 진짜 정이 담긴 행위와 공감할 수 있는 대화와 의미 있는 호칭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여, 우리의 추석은 가벼워져야 한다. 더 무거워져서 침몰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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