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냉정함에 베이는, 그대 이름은 부모

by 지성파파

#1.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가정의 풍경은 이런 것이었다(비현실적인)


주말이면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한 얘기로 꽃을 피우는 장면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서도 '이 음식을 맛있게 먹을 가족을 생각하면 너무 행복해'라는 생각을 하며 가사의 노동을 즐거움으로 가득 찬 소풍으로 여긴다.(어쩌다, 간혹 이런 엄마들도 계시다)


거실에서는 음향 좋은 엠프를 통해 쇼팽의 녹턴과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BGM으로 조용히 흐르고 있다. 잔잔한 음악과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식의 맛있는 냄새가 하모니를 이룬다.


아빠는 까칠한 중학생인 아들하고 바둑과 오목과 체스를 두면서 세상사는 얘기를 하고 아이의 꿈과 학교생활과 게임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웃음소리가 주방으로 스며들어.. 식사를 준비 중인 엄마를 행복하게 한다. 아빠는 틈틈이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음식 준비가 엄마의 수고로움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도 초등학교 2학년인 막냇동생과 보드게임을 하면서 여유 있게 밥상을 기다리며 동생과 아빠의 바둑판을 응시한다. 자신의 대학 진학 문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면 철저히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스스로 조바심이 나고 긴장이 되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한다.


중학생인 아들은 고사양의 스마트폰은 거부하고 공신폰을 택하고.. 부모의 잔소리 없이도 공부시간과 게임시간, 그리고 본인 친구들과의 노는 시간을 적절히 조절해서 엄마 아빠의 칭찬을 받는다. 초등학교 2학년인 동생과도 잘 놀아주면서도 의젓하게 자신의 방 정리와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거실에서는 웃음꽃이 피어나고 가족들의 얼굴에는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이 서로를 감싸고 BGM으로 조용한 피아노 연주곡이 거실을 채운다. 토요일 오후의 햇빛은 따사롭고 그 온기는 가족들의 가슴에 사랑을 심어주고 일주일 동안의 온갖 스트레스와 긴장을 해소시킨다. 잘 널어진 빨랫대 사이로 오후의 잔 햇살이 흩뿌려지고 조잘조잘 얘기 소리에 솜털 같은 졸음이 찾아온다.


따뜻한 가족드라마 같은 풍경을 지닌 가정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을까?




#2.

우리의 현실은 거의 이렇다


워킹맘인 엄마는 주말이 더 싫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게 더 좋을 정도로 가사가 순서대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공백은 가정의 패닉을 불러온다. 특히 세끼를 집안에서 해결하는 주말이 되면 그야말로 짜증의 연속이다. 식구들의 밥 준비와 설거지는 누가 하며 잔뜩 쌓여있는 저 빨래 더미는 누가 해줄 것인가. 배달시켜먹는 메뉴는 뻔하고 건강에도 안 좋을 것 같아 가능하면 해 먹고는 싶지만. 주방에는 가스레인지의 주변 온도와 더불어 엄마의 분노 게이지도 동시에 올라간다. 주방보조나 세탁을 해주는 로봇이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언감생심.... 가사분담을 외치는 남편이라는 존재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아빠는 평일에는 이런저런 모임과 회식 때문에 대게는 저녁이 없다. 휴일에는 일주일의 피로 때문에 침대나 소파와 한 몸이 된다. 때로는 등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토요일 일찍부터 집을 나서기도 한다. 비록 맘은 굴뚝같지만 맞벌이로 고생하는 아내의 가사에 자잘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아이들의 진학 문제나 공부에도 마음만 있을 뿐 시간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빠는 자칫하면 뭘 해도 가족에게 욕먹는 상황이다. 누굴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사는 건지.....


거실에서는 중1 큰아들과 초2 막내아들이 알라딘 OST를 들으며 싸우고 있다. 저 나이 차이에도 형제들이 싸울 수 있구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자주 다투고 있다. 음악도 조용하기는커녕 시끄러운 랩 위주이거나 영화 OST가 흘러나와 서로 대화하기 힘든 환경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중학생인 아들은 공부는 밥 먹기 전 후딱 해치우는 에피 타이즈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 그야말로 의무방어전으로 수학 인터넷 강의를 하나 듣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메인 메뉴로 생각하는 아들 때문에 부모는 복장이 터진다. 화난 마음에 엄마가 한소리 하게 되면 아들에게는 당연한 잔소리가 되게 되고, 그런 상황은 늘 반복되고. 한 사람이 포기할 때까지. 나머지 가족들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저렇게 공부 안 하고 맨날 놀기만 하면 어떻게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얻고, 어울리는 배우자를 얻을 수 있을까. 별 쓸데없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슴 전체가 답답해진다. 아직은 어떤 말을 해도 귀에 못이 박힌 듯. 부모의 말은 사춘기의 까칠함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턱대도 비난하거나 체벌을 할 수도 없는 문제고. 그래서 부모의 고민은 깊어져 간다.


코앞에 수능이 기다리고 있는 고3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같이 손잡고 흉부외과나 심장 관련 전문의한테라도 가봐야 하나. 아마도 이런저런 검사를 해봐도 아무런 질병의 징후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유된다는 얘기만 듣고 발길을 돌리며 같이 호프집으로 향할 수도 있겠다. 이럴 때는 역시 술이 최고야 하면서. 토요일 저녁이 되면 동네 술집에는 서로 위로하는듯한 부부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인생 뭐 있어. 다 그런 거지" 하면서.


우리는 늘 유토피아 같은 일상을 꿈꾸지만 몸은 냉정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가정을 이루고 사랑으로 인해 가족을 늘린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없는 사실이다. 가정의 틀 안에서 유효기간이 끝난 것 같은 사랑을 빼고 나면 뭐가 남을까? 우리가 바라는 가정의 모습은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어야 옳다. 부모와 아이들, 부부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과 적당한 불협화음. 그런데 문제는 많은 가정에서 만족과 불협화음의 밸런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가정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손도손이 아닌 노발대발이 주된 분위기가 되어버린 가정도 많다. 부모는 부모대로 가정과 직장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가정과 학교에서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받는다. 서로가 뿜어내는 스트레스 연합군의 위력은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떤 부모도 자신의 가정이 불행과 불화가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부모 나름대로는 스스로에게나 아이들에게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한다. 직장에서 인간관계나 업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가정 내 분위기가 좋고 가족끼리 화목하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집 밖에서 성취감을 느끼더라도 가족이 반목하고 불화한다면 부모의 스트레스는 최고치에 달한다.


우리의 머리는 늘 이상을 향하지만 가슴은 현실에 남는다. 부모가 바라는 가정의 이상적인 풍경도 머릿속에서는 살아 숨 쉬지만, 가슴속에서는 이상적인 가정을 그려가는 분투만 있을 뿐이다.

결국에는 이상과 현실의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 이상과 현실의 갭을 최대한 줄이는 노력을 항상 해야 하고, 때로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과감히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타협점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나 부모 모두 가슴 한쪽에 응어리를 안게 된다.


고3 딸과 중1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정말 아이들의 미래나 공부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 대화하다 보면 "부모 노릇도 쉽지 않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부수적으로 부부가 서로에게만은 스트레스를 주고받지 말아야지 하는 작은 배움도 얻는다.


가정은 사랑의 공간이면서 가족으로부터도 상처를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부모라 해서 아이들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그런 불만을 드러내지 않거나 속으로 삭이며 사는 것이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부모에 대한 불평불만이 한때의 문제려니 하면서 그런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시 하루를 발버둥 치며 살아가려고 밤을 보내고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스트레스를 주고받가족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들을 위해 어찌 되었건 오늘 하루를 살아나간다.


우리는 늘 현실이라는 냉정함에 칼로 베인 듯 상처를 입는다. 그것도 여러 번 베인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혹은 아이들로부터.


그래서 그대 이름은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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