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고민하는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고민에 대해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선택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 선택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첫째는 사적인 부탁을 누구까지(혹은 어디까지) 들어줄 것인지 여부다.
사무실에서 친하게 지내는 직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선뜻 말하기가 곤란한지 머뭇거리다가 던진 한마디.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업무가 아닌 거 같은데.... 자꾸 부탁을 하길래... 어쩔 수 없는 하는 중인데요."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상급자(적당히 아는 사람)가 부탁을 해서 하는 중이라는 얘기였다. 그것도 사적인 용무를. 누군가에게 대량으로 무언가를 보내는 작업이었다.
본연의 공적인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용무를 부탁 아닌 부탁을 하길래 그걸 처리하다 보니 짜증이 나더라는 대답이었다. 왜 그럴까? 공적인 업무공간에서 사적인 일을 부탁이나 (부탁을 빙자한) 지시를 하고, 그걸 부탁받거나 지시받은 사람은 왜 거부하지 못하고 그것을 하고 있을까.
더럽고 치사한 밥벌이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아니면 거절하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는 성격 탓일까. 우리는 어떤 관계에서 사적인 부탁을 허용하고 거절할 것인지 그 기준도 없어 행동하기가 애매할 때가 많다.
언제까지 이렇게 타인에게 이끌리는 삶을 살 것인가?
둘째는 마음 편하게 누구까지(혹은 어디까지) 밥과 술을 살 수 있는지 여부다. 이는 경조사에 있어 축의금이나 조의금의 액수를 얼마 정도 할 것인지 여부와도 관련 있다.
옆 부서의 부장은 다른 과의 부서원들에게도 밥을 사고 술자리를 자주 마련해서 인기가 좋다. 문제는 두 가지에서 발생한다. 그 부장의 속 얘기를 들어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인사평정에서 직원들의 다면평가를 고려해서 산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부장의 말 못 할 선행(?)때문에 다른 이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서 하거나 할까 말까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와 식사와 술자리를 하는 게 모두가 두 손 들고 환영하지는 않는다. 가족이나 친밀한 관계가 아닌 이상 의례적으로 마련한 밥과 술이 그리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밥과 술을 사야 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에게 당연하고 부담 없이 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담을 느끼거나 어쩔 수 없이 사야 되는 경우도 있다. 상급자나 연장자로서 지갑을 열어야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남들이 하기 때문에 의례상 따라서 해야 되는 경우도 많다.( 그 남들이 내가 될 수도 있다.)
공사 조직을 막론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 인간관계는 피로해진다. 내실보다는 형식에 치우친 인간관계가 개인의 내면을 왜곡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주객전도가 발생한다.
언제까지 이런 형식적인 예절에 얽매여 살 것인가?
#2.
처음 한두 번은 사적인 부탁을 하더라도 예의상(친분상) 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이 되고 일상이 되면 곤란한 상황이 된다. 부탁을 받고 해주는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불편함이 꽃을 피운다. 왜 저 사람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까. 왜 나는 이런 불편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이 생기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조직에서 직급이나 상하관계에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피해를 당하는 쪽은 부탁을 받는 쪽만이다.
밥과 술을 사고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불편한 관계에서는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특별히 친밀하거나 사적인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는 즐거운 식사자리나 술자리가 될 수는 없다. 이게 밥인지 모래알인지 모르는 자리를 경험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그 고역과 불편함을.
흔히 자발적인 친절함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을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쪽에서는 상대가 거절 못하는 상황을 친절함으로 착각(또는 오인)하고, 강요당하는 쪽은 마음속의 불편함을 참는 것을 친절함의 일부로 여기는 경우다. 타인의 침묵이나 불편한 눈빛을 승낙의 표시로 해석하는 나쁜 습관(관행)도 거기에서 나온다. 특히 조직사회에서는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나 사적인 부탁을 적극적인 거절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타인과의 사회적인 거리두기에서 실패한 탓일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거리두기를 잘하고 있을까? 인간관계의 초석은 상대방과의 적절한 거리두기다.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중요하다. 인간관계에서 한번 거리가 잘못 정해지면 대부분의 상황은 그 범주 내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가족관계뿐만 아니라 조직생활에서도 적절한 거리두기는 필요적이다. 특히 공사 구분이 잘 안 되는 한국사회에서는 거리두기가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정적인 문화 때문에 더 안된다는 딜레마가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를 제외하고 무언가를 논하기에는 그 비중이 너무 크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관계의 등급을 정해 개인의 행동 범위를 정하면 어떨까?
#3.
관계의 피로를 벗어나고픈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관계 등급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A등급 - 가족이나 가족에 준하는 절친 그룹
B등급 - 자주 연락하는 친구 그룹, 친한 동기나 선후배들, 회사 내 친한 동료(사적인 교감과 공감이 있는 이들)
C등급 - 어쩌다 연락 가능한 동창(친구)나 일반적인 회사 동기나 선후배들,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
D등급 - 얼굴 혹은 이름만 아는 사람들 전부
* 이 등급은 사람의 등급은 아니고 서로 간의 관계(친밀도)의 등급이니 오해하면 안 된다.
A등급의 경우는 앞서 말한 두 가지 고민이 거의 문제 되지 않는다. 가족이나 가족에 준하는 아주 친밀한 그룹에서는 얼마든지 사적인 부탁이 오가고 부담 없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서 축의금이나 조의금의 액수는 크게 의미가 없다. 금액의 최고한도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무형적인 해결할 방법이 있기 때문에.
B등급의 경우 또한 큰 고민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관계에서는 서로 불편하지 않게끔 거리감을 가지면서 친소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B등급의 관계에서는 친밀함의 정도가 A등급에 비하여 떨어지기 때문에 사적인 접촉의 빈도가 덜하고, 사적인 부탁의 정도 또한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범위 내에서 행해질 것이다. 이 그룹의 경우도 애경사 때 주고받는 축의금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허용하는 최고한도가 나름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친밀도에 따라서.
C등급의 경우에 해당하는 인간관계가 그 폭이 가장 넓을 것이다. 학교에선 만난 친구들이거나 직장에서 같이 근무하는 이들 상당수가 이 범주에 속한다. 형식적인 인간관계에서 시작된 고민거리의 핵심도 이들과의 관계에 있다. 이 등급이 A등급과 헷갈리지는 않는다. 이들은 B 또는 D등급과 그 경계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이 그룹의 경우는 사적인 부탁의 경우나 경조사 때의 금액도 관계만큼이나 일정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건건이 고민이 뒤따른다.
D등급의 경우는 오히려 고민되지 않는 대상들이다. 그 대상자는 많으나 인간관계에 부담이 없는 이들이다. 거의 연락이 되지 않는 동창들이나 이름만 들어본 동기들 혹은 서로 눈인사만 하고 지내는 회사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큰 조직의 경우에는 D등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그룹의 경우에는 사적인 부탁을 하기는 어렵고거절하기는 쉽다. 경조사 때 성의를 보일 것인지 여부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냥 서로 안 하면 된다.
결론적으로는 A나 B등급만 서로 같이 사적인 부탁을 하고 밥과 술을 편하게 먹고, 나머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 C나 D등급의 사람들은 서로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반길 수도 있다. 자칫하면 이들과의 관계는 서로의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관계일 수 있기 때문에.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라는 예의상 해보는 말이 진짜 형식적인 예의일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부장은 C나 D등급의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본인도 불편하고 타인들도 즐겁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따라서 할 필요도 없다. 그 시간과 비용을 AB등급의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훨씬 더 바람직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선택과 집중"이다. 효율적인 삶을 살 필요가 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취지로 얘기를 했더니 반응이 다양했다.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 어떻게 인간관계를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바람직할 것인데.... 시간과 경제적으로 많이 여유가 생길 것 같다."
어떤 인간관계가 옳을까. 어떤 선택이 바람직할까. 모두가 개인에게 달려있다. 답도 없는 인간관계에서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