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만의 합격기를 쓰고 싶었다

by 지성파파
시험이 끝나고 밤늦게 마지막 채점을 했다.


음주 채점 결과, 점수는 수험가에서 떠도는 커트라인을 한참 넘어갔다. 속으로만 조용히 환호를 내질렀다.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에게 특별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최종 합격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동안 못했던 평범한 일상을 즐기면서 필기시험 발표를 기다렸다. 전에는 합격자 발표에 이름과 수험번호가 같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목 하에 수험번호만 발표한다. 따라서 주위에 누가 붙었는지 확인을 해보고서야 합격여부를 알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합격자 발표일 날 내 번호가 있기를 바랐다.


여유 있을 것 같은 채점 결과에도 발표 당일까지 조바심이 났다. 혹시라도 답안지 마킹 실수를 했으면 어쩔까. 수험번호나 이름을 잘못 적었으면 어쩔까.... 하는 마음에 발표일 며칠 전부터는 잠도 오지 않았다. 부모님에게는 올해는 반드시 붙겠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던가. 그동안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동안 밥벌이를 하지 못해 죄송했었는데... 고시공부를 하느라 부모님을 힘들게 했던 시간들이 작년까지 몇 년이었던가.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현실이 부당하게 느껴졌기에 한참 동안을 방황했었다.


대학 동기는 고시에 합격해서 누구는 판검사로 누구는 대형 로펌에 변호사로 잘 나가고 있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왜 내게는 저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노력이 부족해서일까. 능력이 모자라서일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고민 끝에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인생은 내 맘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과 내가 원하는 삶이 반드시 나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의 외피는 주관적인 만족감이 빠진 상태에서 평가되기 때문에 그저 좋아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직업세계에 관해서는. 하지만 그들이 당면한 현실과 내면의 고백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다.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을 자각하는데 도움은 줄 수 있었다. 살다보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자신을 돌아봐야만 하는 성찰의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삶은 늘 순간의 자기만족과 타협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내일은 늘 오늘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든 순간. 아낌없이 지난 시간과 미련을 버렸다. 먼저 사회에 진출한 (특히 고시 합격한) 친구들과 비교하는 못난 생각 또한 버렸다. 저마다 각자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거늘. 누가 진짜 행복한지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나는 너무 비교하는 삶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나... 지금 나의 삶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는가. 오로지 시간이 흐른 뒤에 나만이 나의 인생을 평가할수밖에 없다. 답은 늘 내안에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내 삶 안에 타인의 기준이 살게하지 않고, 내 삶의 씨앗이 스스로 싹 틔우기를 바라리라.


이제는 그냥 밥벌이를 하고 나 자신의 행복에 충실 해보리라. 그래서 시험과 수험서를 몽땅 바꾼 게 작년이었다. 짧은 준비 시간이었지만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공부량이 있었기에 시험 준비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법학과목에 관련된 공부를 계속 해왔기에 법원서기보 공채시험에 응시하기로 결심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새로운 시험에 도전해보리라.


비교하는 삶을 버리고 내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으면서부터 순간 시험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특별히 성공해서 잘 나가는 내가 아닌 평범한 아무나 되기로 한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특별한 꿈도 가지지 못한 채 수능 성적으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였다. 대부분 그러하였듯이. 문과에서는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호기 있게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것이 십수 년 전이었다. 그동안 국가에서 요구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기간을 제외하고는 상당기간을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20대를 그대로 흘러 보냈다. 대학 시절의 낭만은 핑계 좋게 유보되었고, 현실은 도서관과 수험장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공부하는 동안 앞서 합격한 이들의 합격수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목적의식이 희미해지거나 공부 태도가 나태해질 때 이보다 더 좋은 처방전은 없었다. 동기부여가 잘 안될 때 먼저 합격한 사람들의 분투기는 의지를 샘솟게 하는 마력을 가진 주문이었다. 공부하는 동안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 같은 책과 공무원 시험 합격자의 수기를 몇 번(편)이나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합격기를 보면서 타인의 노력과 심적인 고통을 이해하려 했었고, 내 자신의 바닥난 의지에도 힘을 보탰다.


시험공부 내내 다짐했던 한 가지. 내 자신만의 합격수기를 쓰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만의 삶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청춘을 낭비한 진솔한 반성이자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다른 이의 눈에 비친 고시생(혹은 공시생)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떳떳하게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으로서 자신을 그려보고 싶었다.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내 아이에게 자신있게 말해줄수 있는 아빠의 이야기를 담아두고 싶었다.


필기시험을 치르고 20여 일 후에 그토록 기다리던 1,2차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커트라인에서 평균 5점이 넘는 넉넉한 점수로 합격을 했다. 2주 뒤에 치른 면접시험에서 진땀을 흘리긴 했지만, 심층면접 대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합격은 기정사실이었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 중에 심층면접 대상자가 있어 마음 편하게 웃지도 못했다. 필기시험 합격자의 10% 정도가 면접에서 탈락하는 현실에서 그저 안도의 한숨을 내쉴뿐이었다. 그날 저녁 술자리에서 그 친구의 최종 합격을 마음속 깊이 빌었다. 오래간만에 홀가분하게 술잔을 비우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저녁이었다.


봄빛이 익어가던 어느 목요일. 대법원 시험정보 최종합격자 발표에 내 번호가 또렷하게 있었다. 심층면접까지 갔었던 그 친구도 기사회생으로 합격자 명단에서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자신의 합격기를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췄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조용히 축하파티를 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늦깎이로 시작되는 공무원 생활을 잘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천직으로 알고 나름 전문성을 길러서 의미 있는 직장생활을 해보겠다는 투지가 술잔을 거듭 비우게 만들었다.


이제 내 앞에는 법원공무원교육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법원공무원이 되기 위한 최후의 관문.


이 글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바라본 어느 공무원 시험 합격생의 이야기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3년 동안 연수생들의 지도교수를 하면서 상담과 대화를 통한 간접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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