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과 "꼰대"의 재해석과 재활용법

by 지성파파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가 포털의 어학사전에 등재됐다. 그 뜻은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표현"이라고 되어 있다. 라떼라는 발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처음 아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우유를 탄 커피 Latte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밥 먹으며 자신에게 얘기하는 아빠를 꼰대라고 비꼬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아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하거나 현재와 예전을 비교하면 아들은 무조건 반사로 하는 말이 있다. 아들의 무조건 반사 같은 상투어.


"그것은 옛날이고, 아빠는 나이 먹은 꼰대고"


기성세대와 현재의 젊은 세대와는 의사소통방법이나 관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직의 현장에서 이러한 차이 혹은 다름으로 인해 서로가 불편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부장님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업무 스타일이나 인간관계의 속성이 신입사원이나 경력이 짧은 직원들에게는 이물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들거나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태도의 문제로.


우리 아들이 아빠를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호칭하듯. 젊은 세대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이끌어가는 기성세대를 비꼬아 "꼰대"라 부르고 있다. 실제로 주위에서 보면 자기만의 세계와 시대정신을 주로 강요하고 타인이나 다른 세계관을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진정한 어른이 되고자 하나, 결국은 꼰대가 되고 마는 것이 오늘날 슬픈 자화상이다.


아무튼 요즘 아이들이나 젊은 층에 의하면 "옛것"은 지금은 필요성이 없는 이미 흘러간 것이고, "꼰대"는 그런 옛것을 재탕 삼탕 하는 어른이라는 표현의 다른 말이다. 과연 이들의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옛것"은 모두 쓸모없이 흘러간 것인가?


옛것 중에는 현시점에서 쓸모없는 것도 많다. 인간은 관념과 관행에 사로잡히는 동물이다. 그때는 그게 옳다고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틀리거나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부모세대의 관념이나 관행 중에는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것들도 많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차별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가정 내 부부나 부모 자식의 관계, 사회나 조직 내에서의 강요된 위계질서, 약자나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등. 한때 비행기나 기차에서 담배를 버젓이 피우던 시대도 있었다. 불과 몇십 년 전의 얘기다. 지금 같으면 모두가 경악할 일이지만.


하지만 옛것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잘 살펴보면 영원불변하거나 지금도 유용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결정짓는 감정과 테크닉들, 남다른 가족애와 끈끈한 공동체 의식,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정의감 등은 오히려 요새 더 보기 힘든 것들일 수도 있다. 물론 요즘 세대가 살아가는 것이 더 팍팍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힙합풍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랩을 중얼거리는 세대에게 70~80세대의 서정적인 가요는 이상한 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때 배꼽을 잡고 웃었던 개그 소재가 세월이 흘러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아재 재그가 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서로 같은 것도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속성이 전혀 다른 것을 다르게 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렇게 보면 "옛것"과 "지금"것의 차이나 다른 점은 단지 그 시대적인 트렌드나 인식의 차이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트렌드나 인식의 속성은 변하기 마련이며, 옛것과 지금 것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당부를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오히려 옛것이라 불리는 것 중에는 지금 시대에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도 많다.




"꼰대"는 과연 부정적인 것인가?


꼰대라는 말은 70~80세대들에게는 학교 선생님을 낮춰 부르는 일종의 은어였다. 그때도 선생님이나 자신의 아버지를 꼰대라 부르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 꼰대라는 말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기성세대"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꼰대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불려진 것이 비단 최근의 일일까? 이러한 의미로 어학사전에 등재된 것은 최근의 일일수 있지만,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인식한 것은 아주 오래된 얘기일 것이다. 지금의 꼰대는 자신의 한세대 전의 어른들에게 꼰대라고 생각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전 세대도 그 전전 세대에게 그렇게 생각했었을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근세나 중세 혹은 그 이전의 동서양을 불문하고. 혹여나 플라톤도 소크라테스를 꼰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꼰대라 불리는 이들이 십 대나 이십 대 무렵. 그 시절의 꼰대들도 신세들에게는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해방과 6.25, 군사정권을 거쳐오면서 강요된 일방적인 이데올로기는 어느 가정에서나 유사한 방식으로 전파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강압적인 방식으로 복종과 순종을 강요당한 세대가 지금의 꼰대 세대일 가능성도 있다.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물질적인 발전 속도가 정신적인 발전 속도보다 빠를 수밖에 없는 문화지체 현상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그 시절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비민주적이었고, 가정 내의 분위기 또한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오히려 꼰대가 부정적인 기성세대의 특징을 아우른 것이 아니고 단지 기성세대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꼰대는 어느 시대나 어떤 형식으로나 늘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기성세대는 숙명적으로 신세대들에게 자신들의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아우르는 기본적인 성정이나 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도 진화할 수 있겠지만, 동서양의 오랜 역사를 돌아볼 때 그 변화는 크지 않다. 밀레니엄이 달라지더라도 인간의 본능과 심성이 하루아침에 돌연변이로 변할지 않는 한, 이천 년 전의 인간이나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기성세대와 신세간의 꼰대 논쟁은 인간의 심성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시 어학사전의 표현을 그대로 도식화시켜보면.


자신의 경험의 일반화 + 일방적인 생각이나 행동의 강요 = 꼰대


개인 경험의 일반화는 시대나 세대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으킬 수 있는 오류 중 하나다. 이는 자신의 경험을 과도하게 믿는 이들이 주로 걸리는 착각으로 시대불문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하지만 조금만 겸손해지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일방적인 생각이나 행동의 강요는 물론 잘못된 것이다. 이는 의사소통의 방법이나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의 차이에서 주로 기인한다.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특히 그렇다. 나이가 많고 경험을 먼저 체득한 이와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함께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꼰대라는 말도 이들 관계에서 자연스럽다.


그런데 위의 도식화를 잘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기술적인 것이다. 본질적이 아닌, 그때그때 변할 수 있고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그렇다면 지금의 꼰대와 꼰대 아닌 이들과의 관계도 이런 기술적인 부분을 잘 조정하거나 이해하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세부적인 방법에 관한 것은 함께 고민해야 할 일이다.) 특정 개인의 노력은 당연지사다.


문제는 <옛것과 꼰대의 기준>을 살아온 시간대와 나이로만 정할 것인가? 다른 기준은 없을까? 나이 어린 꼰대는 존재하지 않을까? 만약 나이 어린 꼰대가 옛것을 말하면 그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런 기준을 누가 정해줄 수는 없는가? 이렇게 사사건건 구분하고 구별하자고 하면 역시 꼰대라고 부를 것인가?


현재의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부르는 이들도 조만간 꼰대가 되는 시간이 어김없이 온다. 그때 자신만큼은 꼰대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젊은(혹은 어린) 사람들은 진성 꼰대가 별소리를 다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때가 되면 지금 자신들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하고 있거나 듣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신기한 것은 옷 스타일만 복고풍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념이나 감정도 세상과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어느 시간대에 "짠"하고 등장하게 된다. 아니면 은밀하게 은폐하거나 변장해서 숨죽인 채로 지내다가 필요성이 대두될 때 다시 본모습을 나타낸다. 어차피 우리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꼰대가 될 숙명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신세대와 기성세대가 공감하는 방법과 대화방식의 문제다. 물론 방식에 관한 논의 이전에 서로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양자가 근본적인 차이가 있거나 다른지를. 양자가 쉽게 섞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방법이나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라면 해결책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옛것과 꼰대>를 달리 해석하고 서로에게 유리하게끔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꼰대와 꼰대 아닌 이들에게 여전히 취사선택의 기회가 남아있다. 어쩌면...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신기루 같은 것이거나 이상향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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