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째_산타카탈리나 데 소모자->엘 아체보(28Km)

까미노 데 산티아고

by 로카
순례자 동상, 십자가, 산티아고까지 길을 안내하는 노란 화살표


왠지 어제 소모자 마을까지 가고 싶더라니 그 곳에서 우연히 독일 아줌마 모니카를 다시 만났다. 레온에서 헤어진 후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모니카를 만나니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발이 많이 아픈 모니카는 오늘 하루 더 소모자에 머물기로 했다. 그녀는 출발하려는 나에게 응원의 의미로 모닝커피를 사 주었다. 헤어짐은 언제나 힘들다. 돌아서 나오는데 왠지 눈물이 났다. 등 뒤에서 무언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래도내가 가야 하는 나의 길을 가야지...


오늘은 일정대로라면 크루즈 데 페로(십자가 언덕)를 지나는 날이다. 많은 이들이 고국에서 가져온 돌을 소원을 담아 쌓아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 날을 위해 많은 이들이 순례 첫날부터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배낭에 넣어서 걸어온다. 나는 돌을 가져오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챙겨온 나의 어릴 적 사진 두 장이 있었다. 크루즈 데 페로에 내려놓을 생각은 전혀 없이 나와 같이 걷기 위해 품고 온 사진이었는데... 순례길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그중 한 장을 이 곳에 두고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란 정말 있는 걸까? 왜 나는 두 장의 사진을 가져온 것일까... 그중 오늘 이후에 남을 한 장은 또 어떤 의미로 사용이 될까... 살면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수백만 가지 일들이 어쩌면 우연이란 이름으로 정의되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 하나의 우연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임을...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내 마음은 열려있는가...



두 개의 갈림길. 야고보(산티아고)의 순례길 친구인 조개와 화살표. 십자가 그리고 무지개 많은 것을 말해주는 사진이다.


26일을 걸은 순례자의 얼굴

길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임을... 약속을 믿고 가는 그 길...


그동안 나는 수 많은 갈림길 앞에서 셀 수 없는 고민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정작 나는 그 갈림길 앞에서 고민할 것이 아닌 길이 아닌 강을 건너야 했었던 것인데... 보이지 않던 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틀 전 길을 잘못 든 덕분에 나는 친구들보다 하루 앞서 있는 것 같다. 순례 첫날 생장피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오늘은 고도 1,400m까지 올라가야 한다. 가다가 내가 좋아하는 떼제의 노래를 비에 젖은 흙바닥에 끄적여본다...


Our darkness is never darkness in your sight.

The deepist night is clear as the day light.

당신에게 우리의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닙니다.

가장 깊은 밤은 대낮의 빛처럼 맑습니다.


순례길에서 철조망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십자가 행렬이 이어진다. 순례자들이 하나씩 걸어놓았을 십자가 행렬에 나도 겸허히 동참한다.


17Km 정도를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다. 부활절에 크루즈 데 페로에 간다니 너무도 감격스럽다. 크루즈 데 페로는 순례자들에게 특별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걷는 게 힘이 든다. 자꾸 지난 기억들이 나를 끌어당겨 한발 한발 옮기기가 어렵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구역질이 난다.


그러나 내 마음이 그곳까지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힘든 몸은 눈물을 낸다. 나는 아직도 그 곳에 갈 준비가 되지 않은 걸까... 크루즈 데 페로를 2Km 앞에 남겨두고 길을 잃었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갔어야 하는데 정신이 혼미했던 나는 전신주 경고판(노란색)을 따라 걷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는데, 산 위에 전신주를 따라 걷고 있다니... 정신을 차리고도 길을 찾을 수 없어, 3개의 각기 다른 언덕을 헤매고 있었다. 벌써 1시간 반이 지났고, 산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2시간 후면 해가 질 것 같다.


나는 오늘 크루즈 데 페로로 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고, 이전 마을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끝까지 고집을 부렸을 테지만 오늘도 내일도 신은 나와 함께할 것이고, 나는 내 고집 때문에 위험에 처하거나 내 몸을 상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떼제에서 나 자신과 한 약속을 길 위에서 지키고 있었다. 다시는 나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나를 사랑해 주겠다고... 어쩌면 내 인생이 이러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직업, 남의 시선... 이런 것들에 집착하느라 진짜 중요한 나라는 존재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진짜 중요한 나를 힘들게 하고 다치게 하고 있었는지도...


산을 돌아 내려오면서 나는 신께 그분께 말했다... '알겠어요... 내일 크루즈 데 페로에 가라는 말씀이신 거죠? 그럴게요... 제 존재가 가장 소중해요.. 제가한 무언가에 갇히는 것보다 그 무엇을 이루는 것보다...' 돌아 내려올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총 : 29.3 유로

1. 알베르게 5.0

2. 저녁 9.7

3. 점심 및 간식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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