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째_산타카탈리나 데 소모자->엘 아체보(28Km)

까미노 데 산티아고

by 로카
20130401 (11)_santiago de compostela.jpg

산을 내려와 이전 마을로 이어지는 메인도로에 왔을 때 세 명의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산티아고부터 거꾸로 순례를 하는 이들이었다. 나는 크루즈 데 페로가 어디 있냐고,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고 그들은 1Km만 가면 된다고, 오늘 크루즈 데 페로를 지나 엘 아체보마을에 머물 시간이 충분히 될 거라고 한다.


지금 순례길이 있는 산 위에는 비가 많이 내려 건너기 힘든 웅덩이가 많으니 그냥 메인도로로 걸어가라고 한다. 오늘 크루즈 데 페로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마음을 접었는데, 순례자라곤 나 밖에 없던 오늘의 길에서 마지막에 세 명의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20130331 (8)_santiago de compostela.jpg 크루즈 데 페로 십자가 언덕
20130331 (13)_santiago de compostela.jpg 내 사진, 페페아저씨의 아몬드, 올리브 가지, 떼제 친구 라우라와 미리엥이 준 초를 십자가에 놓아둔다. 그 옆으로 다른 이들이 걸어놓은 물건들이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크루즈 데 페로(십자가 언덕)에 드디어 도착했다. 길을 돌아 돌아서 결국 나는 도착했구나. 이 장소가 아니라, 이 상황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이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인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도착했고, 이 곳에 내 일곱살적 사진, 페페 아저씨의 아몬드, 성당에서 만난 아저씨가 준 올리브 나뭇가지, 떼제에서 미리앵과 라우라가 준 초를 놓아두기로 했다.


십자가 언덕 위 교회 앞에 앉아 사진 뒷 편에 기도문을 적었다. 나를 위한 기도, 내 심장 속 이들을 위한 기도를 적고 이젠 이 곳에 놓아두고 가겠다고... 버려두고 가겠다고... 도와달라고 지켜달라고 적었다. 내가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었던 것들을 그냥 십자가 언덕에 내려놓고 가겠다고, 도와달라고 적었다. 그리고 크루즈 데 페로를 떠났다.


자갈이 가득한 산 비탈을 지나 해가 지기 시작한 밤 9시 반이 돼서야 숙소가 있는 엘 아체보에 도착했다. 나는 길 위에서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산티이고에 가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던져버린 기억 만큼 내 심장 속에 새로운 공간이 생긴 것 같았다. 그 공간에 나는 재빨리 내가 그동안 받은 사랑들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 유리병의 뚜껑을 꼭 닫았다. 돌아 돌아 왔지만 그런 나의 속도가 참 사랑스러웠다... 고마웠다...


20130331 (10)_santiago de compostela.jpg 다시 걷자. 안녕!
20130331 (37)_santiago de compostela.jpg 오늘의 마지막 남은 햇살. 내일도 여전히 빛날 마음 속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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