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
오늘은 아침부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김없이 느릿느릿 9시가 다 되어 마을을 출발했다. 동 틀 녘에 걷는 것도 아주 운치 있지만 피곤한 내 몸은 대부분의 날들 동안 떠오르는 태양보다 허름한 침대 위에서 오래 뒹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침에 들른 동네 bar에서 카페콘레체(다방커피)와 머핀을 먹고 우비를 둘러쓰고 걷기 시작했다. 어젯밤 꿈에 카미노 길이 나에게 '웃어봐'라고 말한 걸 생각하니 내가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산티아고로 갈 준비가 안되었다며 조바심이 났는데... 이제 나는 담담히, 그리고 조용히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혼자 걷고자 한다.
어제부터 비워진 내 마음속에 따뜻함이 채워지고 있다. 단지 카미노의 크루즈 데 페로(십자가 언덕)에서의 한 번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의 길처럼 매일매일 비우고.. 채우며 단순하게 살고 싶다. 나는 왜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카미노를 다시 오고 싶어 할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제 알겠다. 인생이 바로 카미노이고... 길은 계속된다는 것...
비워진 내 마음속으로 친구들이 들어왔다. 내가 혼자 걷게 된 이후로 앞서 걸으며 매일 알베르게, 날씨, 길에 대한 정보를 메일로 보내주고 있는 에드리안, 길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이상한 사람이 따라오면 도망가라고 매번 잔소리를 해댔던 고마운 타일러와 매튜, 레온에서 헤어질 때 우비, 양말, 스웨터, 장갑까지 내가 필요했던 모든 것을 말없이 사다 놓고 떠난 루이지 체리스, 라우라, 사하, 미리앵 그리고 한국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을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외롭지 않았다. 이 길은 나 혼자 가지만 찰스가 보내준 노래처럼 '더불어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에.. 가파른 내리막에 비와 바람이 몰아쳤고 돌이 굴러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1000m 고도의 돌 산을 내려가려니 무서웠다. 발에 차이는 돌들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 가 없었다. 어제 길을 잃었을 때와는 다른 진짜 공포가 엄습했다.
무릎보호대와 카메라 충전기를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 무릎보호대 대신 접착식 압박붕대를 사서 시큼한 발목에 감고 걸었다. 이제는 버스를 타기엔 산티아고가 너무 가깝다.
지금까지 너무 무리해서 많이 걸었고 날씨도 좋지가 않아 18Km 지점 폰페라다에 멈추기로 했다. 부활절 기간엔 잠시 순례를 하기 위해 카미노로 온 많은 스페인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총 : 29.1유로
1. 알베르게 5.0
2. 저녁 15.0
3. 점심 및 간식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