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째_아체보->폰페라다(18Km)

까미노 데 산티아고

by 로카
20130401 (3)_santiago de compostela.jpg

오늘은 아침부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김없이 느릿느릿 9시가 다 되어 마을을 출발했다. 동 틀 녘에 걷는 것도 아주 운치 있지만 피곤한 내 몸은 대부분의 날들 동안 떠오르는 태양보다 허름한 침대 위에서 오래 뒹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침에 들른 동네 bar에서 카페콘레체(다방커피)와 머핀을 먹고 우비를 둘러쓰고 걷기 시작했다. 어젯밤 꿈에 카미노 길이 나에게 '웃어봐'라고 말한 걸 생각하니 내가 마음이 많이 편해진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산티아고로 갈 준비가 안되었다며 조바심이 났는데... 이제 나는 담담히, 그리고 조용히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혼자 걷고자 한다.


어제부터 비워진 내 마음속에 따뜻함이 채워지고 있다. 단지 카미노의 크루즈 데 페로(십자가 언덕)에서의 한 번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의 길처럼 매일매일 비우고.. 채우며 단순하게 살고 싶다. 나는 왜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카미노를 다시 오고 싶어 할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제 알겠다. 인생이 바로 카미노이고... 길은 계속된다는 것...


20130401 (6)_santiago de compostela.jpg 비가 많이 와서 넘친 개울. 건너기가 어렵다.
20130401 (7)_santiago de compostela.jpg 너무도 가팔랐던 내리막길

비워진 내 마음속으로 친구들이 들어왔다. 내가 혼자 걷게 된 이후로 앞서 걸으며 매일 알베르게, 날씨, 길에 대한 정보를 메일로 보내주고 있는 에드리안, 길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이상한 사람이 따라오면 도망가라고 매번 잔소리를 해댔던 고마운 타일러와 매튜, 레온에서 헤어질 때 우비, 양말, 스웨터, 장갑까지 내가 필요했던 모든 것을 말없이 사다 놓고 떠난 루이지 체리스, 라우라, 사하, 미리앵 그리고 한국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을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외롭지 않았다. 이 길은 나 혼자 가지만 찰스가 보내준 노래처럼 '더불어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에.. 가파른 내리막에 비와 바람이 몰아쳤고 돌이 굴러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1000m 고도의 돌 산을 내려가려니 무서웠다. 발에 차이는 돌들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 가 없었다. 어제 길을 잃었을 때와는 다른 진짜 공포가 엄습했다.


20130401 (9)_santiago de compostela.jpg

무릎보호대와 카메라 충전기를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다. 무릎보호대 대신 접착식 압박붕대를 사서 시큼한 발목에 감고 걸었다. 이제는 버스를 타기엔 산티아고가 너무 가깝다.


20130401 (12)_santiago de compostela.jpg 눈 앞에 보이는 폰페라다
20130401 (13)_santiago de compostela.jpg 그래피티 아트

지금까지 너무 무리해서 많이 걸었고 날씨도 좋지가 않아 18Km 지점 폰페라다에 멈추기로 했다. 부활절 기간엔 잠시 순례를 하기 위해 카미노로 온 많은 스페인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총 : 29.1유로

1. 알베르게 5.0

2. 저녁 15.0

3. 점심 및 간식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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