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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카 Aug 21. 2015

27일째_아체보->폰페라다(18Km)

까미노 데 산티아고

폰페라다 성당 옆 알베르게에 짐을 푼 후 떼제의 엠마뉴엘 수사님이 쓰신 책을 들고 동네 bar로 향했다.  타파요리와 와인을 시켜놓고 싱그러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니 너무도 기분이 좋다. 그 순간 아래 글귀가 눈에 들어와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아마... 그 순간 그 제비꽃이 나 같았나 보다... 

제비꽃을 지탱하는 에너지는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그 에너지가 조화롭게 통합되어 고도로 정밀한 생화학적 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에

제비꽃은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번식을 위해 씨를 멀리 퍼뜨린다.

Patience danz l'azur, Paris, Seuil, 1981, p.159 

내가 순례 중 가장 많이 먹은 것은바로 올리브

폰페라다의 알베르게 숙소. 하루종일 추적추적 비가 온다.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내고 알베르게에서 샤워를 한 후 저녁 예배를 드리러 성당으로 가려고 하는데 알베르게 앞에 루이지가 서 있다. 돈이 없어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단다. 단 5유로가...  사정인 즉 길 위의 모든 ATM기가 작동하지 않아 44Km를 걸어 여기까지 왔단다. 44Km 그것도 고도 1600m의 산을 넘어? 놀랄 노자다. 돈을 빌려주고 비에 흠뻑 젖은 불쌍한 몸을 씻으라고 했다.  그리고 같이 성당으로 향하는데 길 위에서 매튜와 타일러를 만났다.  마찬가지로 길 위의 모든 ATM기가 작동하지 않아 37Km를 걸어 여기까지 왔단다. 


때로는 내가, 때로는 그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는 카미노란 인생길. 가끔씩 이런 기대도 안 한 특별하고 놀랄만한 선물을 선사해주는 인생. 이런 선물들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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