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
폰페라다 성당 옆 알베르게에 짐을 푼 후 떼제의 엠마뉴엘 수사님이 쓰신 책을 들고 동네 bar로 향했다. 타파요리와 와인을 시켜놓고 싱그러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니 너무도 기분이 좋다. 그 순간 아래 글귀가 눈에 들어와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아마... 그 순간 그 제비꽃이 나 같았나 보다...
제비꽃을 지탱하는 에너지는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그 에너지가 조화롭게 통합되어 고도로 정밀한 생화학적 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에
제비꽃은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번식을 위해 씨를 멀리 퍼뜨린다.
Patience danz l'azur, Paris, Seuil, 1981, p.159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내고 알베르게에서 샤워를 한 후 저녁 예배를 드리러 성당으로 가려고 하는데 알베르게 앞에 루이지가 서 있다. 돈이 없어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단다. 단 5유로가... 사정인 즉 길 위의 모든 ATM기가 작동하지 않아 44Km를 걸어 여기까지 왔단다. 44Km 그것도 고도 1600m의 산을 넘어? 놀랄 노자다. 돈을 빌려주고 비에 흠뻑 젖은 불쌍한 몸을 씻으라고 했다. 그리고 같이 성당으로 향하는데 길 위에서 매튜와 타일러를 만났다. 마찬가지로 길 위의 모든 ATM기가 작동하지 않아 37Km를 걸어 여기까지 왔단다.
때로는 내가, 때로는 그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는 카미노란 인생길. 가끔씩 이런 기대도 안 한 특별하고 놀랄만한 선물을 선사해주는 인생. 이런 선물들이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