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째_루테란->폰프리아(27.1Km)

까미노 데 산티아고

by 로카
20130404 (5)_santiago de compostela.jpg 아침 순례 중. 떠오르는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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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루테란에서 받은 맛사지 덕분인지 오늘은 아침에 몸이 너무 가볍다. 오늘은 왠지 많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침 8시 카를로스가 준비해 준 가정식 아침을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선다.

길을 걷다 보니 스페인의 상징인 소 한 마리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조용히 앉아 있다. 이제 막 떠오른 태양과 깃털처럼 나를 지켜주는 것만 같았던 구름 그리고 자연을 걸으니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게 높은 빌딩 숲, 자동차, 팬시한 카페... 이런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원래부터 있어왔던 그런데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그런 소소한 것들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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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스페인 북서부 지방인 갈리시아 지역의 입성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연중 비가 내리는 갈리시아는 음습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녀들의 지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갈리시아에 들어선 걸 환영하는 듯 어김없이 찬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이 비가 귀찮기는커녕 너무 반갑다. 곧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산티아고 입성을 알려주기 때문... 그리고 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반가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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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구름 속을 걸어 꿈꾸듯이 1,200m 높이의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구름 속을 걸으며,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나무 지팡이를 움켜 쥐었다.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해 bar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려고 들어갔다가 50대 낸시 아줌마를 만났다. 2시간 동안 낸시 아줌마와 이야기하는 동안... 아줌마는 내내 울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창피하다고 하면서 선글라스로 눈물을 가린다.

내게는 그녀의 눈물이 너무 순수해 보였다. '낸시, 괜찮아 울어... 그리고 나서 다시 웃으면 돼' 나는 그녀를 토닥여주고, 19일째 빌라 데 카자 알베르게의 봉사자 안나에게서 받은 '순례자를 위한 글'과 프랑스 바욘에서 받은 볼펜을 선물로 주었다. 나보다 그녀에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2시간의 휴식 후 다음 마을로 떠나기로 결정했고 그녀는 다리가 아파 이 곳에 남기로 했다. 낸시와 나는 길 위에서 2시간을 같이 있었을 뿐이지만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했고 의지했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순수한 마음의 교류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아가거나 우리의 환경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지...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 길 위에서 희망을 본다.
사람이라는 희망을...
나에게 내재된 신으로부터 부여된 아름다움을...


20130404 (8)_santiago de compostela.jpg 대낮이었지만 흐리고 어둡고 무서웠던 순례길

우리들의 인생처럼 흐린 날도, 맑은 날도 모두가 순례길의 일부.

20130404 (10)_santiago de compostela.jpg 고도 1,270m 가장 높은 지점까지 왔다.

저 멀리 도로 건너편에 순례자의 동상이 함께 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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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프리아는 어제 까를로스가 추천해준 마을이었다. 구름 속을 걷고 있는데다 비까지 내리는 통에,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걷다가 보니 코 앞에 큰 개가 있다.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보자마자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 개의 시선이 가리키는 맞은 편을 보자 알베르게가 보인다. 바로 이 곳이 폰프리아인 것이다.

이 개는 순례길의 순례견으로 유명한 '밀러'라고 한다. 밀러는 순례자들이 이 길을 지나가면 짖어대지 않고 나에게 한 것처럼 항상 머리로 알베르게를 가리킨다고 한다. 밀러는 지나가는 현지인은 거들떠도 안보지만 순례자만 보면 이런 행동을 하고, 목줄을 풀어놓았을 때 두 번이나 순례자들을 따라 길을 떠났다고 한다. 한번은 실제로 산티아고 입성에 성공해 주인이 산티아고까지 데리러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이후 어쩔 수 없이 목줄을 매 놓았지만 밀러는 순례자만 보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따라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참 믿기 어려운 신기한 이야기이지만 밀러를 보고 있으면 이 이야기가 믿어진다.
한낫 짐승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인간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가...


총 : 28.0유로
1. 숙박 8.0
2. 저녁 12.0
3. 점심 및 간식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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