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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카 Aug 23. 2015

30일째_루테란->폰프리아(27.1Km)

까미노 데 산티아고

아침 순례 중. 떠오르는 태양

어제 루테란에서 받은 맛사지 덕분인지 오늘은 아침에 몸이 너무 가볍다. 오늘은 왠지 많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침 8시 카를로스가 준비해 준 가정식 아침을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선다.

길을 걷다 보니 스페인의 상징인 소 한 마리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조용히 앉아 있다. 이제 막 떠오른 태양과 깃털처럼 나를 지켜주는 것만 같았던 구름 그리고 자연을 걸으니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게 높은 빌딩 숲, 자동차, 팬시한 카페... 이런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원래부터 있어왔던 그런데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그런 소소한 것들이란 것을...



드디어 스페인 북서부 지방인 갈리시아 지역의 입성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연중 비가 내리는 갈리시아는 음습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녀들의 지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갈리시아에 들어선 걸 환영하는 듯 어김없이 찬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이 비가  귀찮기는커녕 너무 반갑다. 곧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산티아고 입성을 알려주기 때문... 그리고 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반가움에...   



비가 내리는 구름 속을 걸어  꿈꾸듯이 1,200m 높이의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구름 속을 걸으며,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나무 지팡이를 움켜 쥐었다. 오세브레이로에 도착해 bar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려고 들어갔다가 50대 낸시 아줌마를 만났다. 2시간 동안 낸시 아줌마와  이야기하는 동안... 아줌마는 내내 울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창피하다고 하면서 선글라스로 눈물을 가린다.

내게는 그녀의 눈물이 너무 순수해 보였다. '낸시, 괜찮아 울어... 그리고 나서 다시 웃으면 돼' 나는 그녀를 토닥여주고, 19일째 빌라 데 카자 알베르게의 봉사자 안나에게서 받은 '순례자를 위한 글'과 프랑스 바욘에서 받은 볼펜을 선물로 주었다. 나보다 그녀에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2시간의 휴식 후 다음 마을로 떠나기로 결정했고 그녀는 다리가 아파 이 곳에 남기로 했다. 낸시와 나는 길 위에서 2시간을 같이 있었을 뿐이지만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했고 의지했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순수한 마음의 교류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아가거나 우리의 환경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지...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 길 위에서 희망을 본다.
사람이라는 희망을...
나에게 내재된 신으로부터 부여된 아름다움을...


대낮이었지만 흐리고 어둡고 무서웠던 순례길

우리들의 인생처럼 흐린 날도, 맑은 날도 모두가 순례길의 일부.

고도 1,270m 가장 높은 지점까지 왔다.

저 멀리 도로 건너편에 순례자의 동상이 함께 걸어주었다...


폰프리아는 어제 까를로스가 추천해준 마을이었다. 구름 속을 걷고 있는데다 비까지 내리는 통에,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걷다가 보니 코 앞에 큰 개가 있다.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보자마자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 개의 시선이 가리키는 맞은 편을 보자 알베르게가 보인다. 바로 이 곳이 폰프리아인 것이다.

이 개는 순례길의 순례견으로 유명한 '밀러'라고 한다. 밀러는 순례자들이 이 길을 지나가면 짖어대지 않고 나에게 한 것처럼 항상 머리로 알베르게를 가리킨다고 한다. 밀러는 지나가는 현지인은 거들떠도 안보지만 순례자만 보면 이런 행동을 하고, 목줄을 풀어놓았을 때 두 번이나 순례자들을 따라 길을 떠났다고 한다. 한번은 실제로 산티아고 입성에 성공해 주인이 산티아고까지 데리러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이후 어쩔 수 없이 목줄을 매 놓았지만 밀러는 순례자만 보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따라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참 믿기 어려운 신기한 이야기이지만 밀러를 보고 있으면 이 이야기가 믿어진다.
한낫 짐승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인간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가... 


총 : 28.0유로
1. 숙박 8.0
2. 저녁 12.0
3. 점심 및 간식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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