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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카 Aug 23. 2015

29일째_빌라프랑카 델 비에조->루테란(19Km)

까미노 데 산티아고

오늘은 다시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출발했다. 산티아고가 있는 갈리시아 지방은 연중 비가 많이 내리기로 유명하다. 갈리시아 지방의 도착을 예정하듯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이는 곧 산티아고 도착을 예정하기 때문에 내리는 비가 왠지 설레기까지 한다. 눈은 며칠째 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몸이 천근만근 늘어진다. 


루테란의 알베르게에  한국인 순례자가 남겨둔 수묵화가 보인다.

중간 마을의 모든 bar에서 쉬어가며 기다시피 17Km를 걸었을 때 베가 데 발카세에 도착했다. 더 이상은 못 걷겠다는 생각이 들어 알베르게를 찾았다. 그런데 아직 비수기인 순례길인데다가 작은 마을에는 더더욱 머무는 순례자가 없어서 알베르게는 개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상심한 상태에서 bar에서 쉬고 있는데 친구들이 속속들이 도착한다. 오늘은 내가 제일 먼저 출발했는데 확실히 늦게 걸었구나...

친구들이 다음 마을인 루테란까지가 2Km만 가면 괜찮은 알베르게가 있다고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기까지 같이 걸은 후 나만 남기로 하고 다시 힘을 내 친구들과 걷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혼자 걸을 때는 그리도 힘이 드는데 함께 걸으면 힘이 덜 든다. 항상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해온 나였는데 어쩜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하고 싶어 하는 존재가 아닐까...


나를 알베르게 앞에 데려다 준 친구들은  내심 걱정을 하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친구들이 나 때문에 같이 남는 게 싫었다. '너는 너의 길을 가야 해, 이게  카미노(순례길)잖아'라고 말한 후 힘이 남아있는 친구들을 보내버렸다.

약간은 외로운 마음으로 알베르게 문을 연 순간, 나는 이 곳이 특별하다는 것을 직감했다은은한 아로마 향, 명상음악 그리고 편안한 분위기의 알베르게는 지친 나를 위해 준비된 에너지가 가득한 곳인 것 같았다.

봉사자 루이스는 오늘은 이곳에 묶는 순례자가 나 밖에 없다고 한다. 야호! 나에게 순례길에서 또 이런 기회가 오다니... 다시금 혼자서 방을 쓰게 되었다.

이 알베르게가 유명한 이유는 봉사자 루이스의 맛사지와 봉사자 카를로스의 요리라고 친구들에게 들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 테라피를 전공한 루이스에게 맛사지를 받고  요리봉사자인 카를로스가 나만을 위해 요리해준 정성 가득한 저녁을 먹었다.

카를로스표 가정식 호박죽, 오믈렛과 샐러드, 와인이 들어간 그들의 호의가 지친 내 몸을 치유해주고 있었다. 


루테란의 알베르게

이제 산티아고까지 일주일 남짓. 몸의 모든 기가 소진되어 피곤해하고 있었는데 오늘 밤이 지나면 왠지 다시 맑은 정신으로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돌아보면 나의 카미노는 정말 굉장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도 이러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순간만을 기억해 내 삶은 왜 이럴까... 우울해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길 위의 친구들, 매일 매 순간이 특별하다. 내가 누군지 알고, 그것을 잘 담아둘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내 삶을 흔드는 것이 아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러기 위해 다시 혼자 이 길을 간다.


순례자 아웩의 말대로 카미노에서는 새로운 질문이 생기기도, 품고 왔던 질문이 바뀌기도 한다. 이제 남은 길..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을까 묻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 평화롭게 남은 이 길을 가고 싶다...  


총 : 59.3유로

1. 알베르게 5

2. 맛사지 30

3. 저녁 7

4. 점심 및 간식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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