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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무지한 사람 맞아요

by 황상열

2018년 가을이다. 9월과 10월 한 달 사이로 내가 쓴 2권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9월말에 그 동안 읽고 썼던 서평을 모은 <독한소감>, 또 한 달 뒤 블로그에 썼던 에세이 글을 모은 <나는 아직도 서툰 아재다>가 그것이다. 출간소식을 블로그, 페이스북 에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었지만, 가끔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오래전 알고 지낸 한 선배들 인데, 지금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허접한 글 쓰고 있냐? 그런 글을 내주는 출판사도 대단하다.”

“고리타분하게 책은 뭐하러 읽어. 그럴 시간에 그냥 잠이나 자던가 게임을 해.”

“누가 사주지도 않는 책 뭐하러 계속 내냐. 너 아는 것도 별로 없잖아. 그런 얕은 지식으로 깊이도 없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처음에는 웃어 넘겼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 같을 수 없고, 분명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에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책을 출간할 때마다 반복되는 레파토리에 진절머리가 났다. 신간이 나올때마다 사준 적도 없다. 정말 내 책이 쓰레기 같은지 한번 읽고 평가해 보라고 공짜로 나눠준 적도 있다. 진짜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 연락하더니 역시 쓰레기 책이라고 폄하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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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쓰레기인지 똑바로 이야기해봐요. 선배라고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그럼 그렇지. 니가 선배한테 그 따위로 행동하니까 그런 소리를 듣는 거야. 그런 정신 상태로 어떻게 책을 쓰냐. 그렇게 쓴 책을 독자가 보겠냐?”

“왜 그렇게 비아냥거려요. 그냥 제가 뭘하든 말든 신경끄세요. 한번 만나서 싸웁시다. 제가 뭘 그리 선배한테 잘못했는지.”

“그러니까 책을 쓰지마. 니 하던 일이나 잘해! 무지한 놈아!”

“네 선배님 저 무지한 사람 맞아요. 이제 그만 연락하세요.”


그 뒤로 선배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 뒤로 쉬지않고 독서와 글쓰기는 매일 조금씩 지속했다. 2019년 <땅 묵히지 마라>와 <괜찮아, 힘들 때 울어도 돼!>를 연달아 출간하고 나서도 이 선배의 연락은 계속되었다. 수신 차단을 했더니 이메일로 쓰레기 같은 책은 그만내라고 아우성이다. 전생에 무슨 악연인지 도대체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한번 만나자고 했다. 오래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퇴근길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직접 얼굴을 보고 묻고 싶었고, 보면 주먹이 먼저 올라갈 듯 싶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으면서 선배를 만나러 갔다. 카페에 거의 비슷하게 도착했다.


“매번 제가 책을 낼 때마다 왜 그런 거에요? 제가 선배한테 잘못한 거 있어요?”

“어, 내가 못하는 것을 니가 하는 게 짜증나.”

“네? 저도 못하는 것 많아요. 선배도 잘하는 것 많은데. 뭘 질투하고 그러십니까?”

“그냥 싫어. 그니까 책쓰지마.”

“아니 선배가 뭔데 내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해요? 선배 인생이나 신경쓰고 살아요.”

“역시 무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앞으로는 볼 일 없다고 하고 나왔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을 왜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는 저 사이코 같은 선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오면서 무지하다라는 말이 계속 내 귓가를 맴돌았다. 내가 그렇게 아는 게 없는 ‘무지’한 사람인가? 그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이 떴다. 마침 휴일 아침이라 인터넷에 ‘무지’의 뜻을 검색했다. “아는 것이 없음” 이라고 크게 나온다. 다시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다 어떤 칼럼에 눈이 멈추었다. ‘단무지’라는 독서모임 글이다. 단무지의 뜻이 ‘단순하고 무식하게 지속하자’라고 나온다.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나는 ‘무지’한 사람이 맞았다. ‘무식하게 지속하는’ 사람이다.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것도 맞다. 독서와 글쓰기를 몇 년동안 무식하게 지속했다. 그 ‘무지’로 인해 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전자책과 종이책을 포함하면 14권의 작품을 이 세상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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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지난 오늘 오랜만에 그 선배한테 문자를 보냈다. 고맙다고. 무지한 사람이 맞다고. 선배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무식하게 지속했다고. 또 가을에 새 책이 나온다고.


이제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성공하거나 한 분야에서 성과를 냈던 사람들은 다 ‘무지’한 사람이란 사실을. 누가 뭐라하거나 시련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무식하고 지속했던’ 행동이 결국 그 사람을 대가로 만든 사실을. 앞으로도 나는 그 선배가 이야기한 ‘무지’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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