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같이 옮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상열씨, 오늘 하루 비용 마감 쳐야 하는데, 같이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20년전 군대 제대 후 PC방 아르바이트를 했다. 3달 정도 하니 업무가 손에 익었다. 매출 정산, 손님 관리, 재떨이 비우기(그 당시에는 PC방내 흡연 가능), 음료수 판매 및 정리 등등이 주업무였다. 매장 규모가 커서 나 포함 3명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일주일은 야간, 일주일은 주간으로 나누어 일을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일의 능률을 위해 나름대로 공책에 메모해서 어떻게 일을 해야 더 좋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좀 겪고 나니 업무의 효율도 올라갔다. 매니저가 그 점을 좋게 봤는지 많은 업무를 나에게 지시하고 시켰다. 시급을 올려준다는 이야기에 덥석 “예!”를 외쳤다. 그렇게 되고 나니 같이 아르바이트 하는 동료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도와달라고 SOS를 쳤다.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던 나는 웬만하면 “예!”를 외치면서 화답했다.
한 두 번은 도와주고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내가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다른 일이 있어서 “아니오!”라고 했더니 사람이 갑자기 변했다고 아우성이다. 한 순간에 도와주지도 않는 나쁜 X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 나는 호구가 되었다. 내 일도 바쁜데, 남의 일까지 도와주어야 하는 그런 신세가 되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이제 당연하듯이 자기가 맡은 일도 하지 않았다. 내가 혼자 다 떠안아야 하는 지경까지 생겼다. 혼자 마감까지 치고 문을 닫고 가는 날이 허다했다. 에너지 소모와 나의 행복지수도 같이 떨어졌다. 참다못해 매니저에게 그만둔다고 했다. 그런데 붙잡아 줄지 알았는데, 그 날로 나가라고 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그 댓가가 이거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니가 일을 똑바로 못해서 내보내는 거야. 그리고 니가 마지막 정산 한다며? 자꾸 금액이 몇만원이 비던데. 니가 가져간 거 아니야? 다른 아이들이 다 그러던데!”
어이가 없었다. 오히려 힘들다고 징징대는 그들을 도와주었는데, 오히려 나를 돈을 훔쳐간 도둑 취급을 당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끼리 뭉쳐서 나를 내보내기 위한 수작이었다. 매니저는 철저하게 그들의 편에 섰다.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 날로 박차고 나와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니 다시 낭비되는 에너지도 없고, 나의 행복지수도 올라갔다. 무조건 “예!”를 외치는 게 아니었다. 상황을 보고 도와줄 수 있을 때만 그렇게 했어야 했다. 하기 싫으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그만인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 회사나 군대 등 조직과 체계가 있는 곳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그 외에 자신의 행복을 죽이고 에너지를 낭비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무조건 “예!”라고 외치는 것은 좋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타인’을 위해 에너지를 쏟으면서 정작 ‘나’는 불행하다고 외친다. 오늘부터 단호하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면 ‘아니오’ 라고 상대방에게 이야기하자. 내가 먼저 행복해야 남도 챙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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