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반 시절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다. 같은 과 동기들은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공사, 엔지니어링 회사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시기에 취업 카페에서 만났던 다른 대학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학벌이나 스펙이 월등했다.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에 유학까지 다녀온 경험까지 있다보니 취업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 친구에게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많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공기업 준비를 하면서 여러 대기업에도 지원했다. 어느 회사든 한 번에 붙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나도 그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준비했다. 한 달 정도 교류하다 각자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돌입했다. 바쁘다 보니 그와의 연락도 뜸해졌다. 취업이 되고 나서 연락을 하기로 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공대생이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웠다. 반 년동안 여러 회사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하자 자신감이 없어졌다.
집안사정으로 취업을 빨리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결국 전공을 살려서 작은 설계회사에 입사했다. 그의 소식이 궁금해서 연락했지만 답이 없었다. 한참 늦게 ‘아직 취업 준비로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는 답장이 왔다. 우선 나도 새로운 회사에 적응해야 했고, 취업 준비로 바쁜 그를 배려했다.
야근과 철야근무로 바빴다. 야근을 하는 어느 날 그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늦게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해서 밤 10시가 넘어 한 술집에서 그를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의 모습은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가진 학벌과 스펙으로 이름만 대면 아는 기업에 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 서류 통과도 쉽지 않고, 그나마 합격해도 면접을 봐도 다 떨어졌어. 내가 너무 자만한건가. 내 가치가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몰랐어.”
“힘내! 너는 대단한 사람이야. 그리 열심히 살았는데, 아직 너와 맞는 기업이 안 나타났을 뿐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사용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힘들다.”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는 그를 보면서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술잔만 몇 번 부딪히다가 시간도 늦고 피곤해서 일어났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좀 더 힘내라고 한 마디 던지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전화가 아니라 문자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본 나는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그의 부고소식 이었다. 이제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했길래 그런 무서운 선택을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치가 대체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자기 감정이나 의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나 감정이 충족되지 않은 듯 했다. 기대가 컸던 것인가? 자신이 생각한대로 되지 않자 자신의 가치에 대해 실망한 듯 했다. 그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참 씁쓸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잘 될 때도 있고 그와 반대로 실패할 수 있다. 인생에서 실패와 성공은 늘 공존한다. 오히려 확률적으로 실패가 많다. 꼭 성공해야 내 가치가 올라가고, 실패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인가? 상황이 어떻든 간에 나 자신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가치라는 것이 대체 뭐길래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그만인데, 가치라는 의미를 잘 못 받아들인 친구가 안타까웠다.
10년전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에 버려졌다고 판단했다. 이제 나의 가치는 무쓸모를 넘어 필요없는 존재라고 여겼다. 이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나 자신부터 내 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와 글쓰기가 이제는 내 가치를 빛나게 한다.
지금 인생이 힘들거나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엘리노어 루스벨트의 “자신의 가치는 다른 어떤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라는 이 구절을 기억하자.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자신의 가치가 빛났던 그 친구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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