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끝자락에 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망쳤다. 시험 한달 전에 본 모의고사 점수가 잘 나왔다. 진짜 시험에서 이 정도 점수만 맞으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응시했던 1996년(97학번)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사상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200점 만점에서 400점 만점으로 처음으로 바뀌는 해이기도 했다.
시험을 보고 나서도 잘 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후회로 실제 결과가 나오는 한 달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다녔다. 아버지는 다시 시험을 보라고 다그쳤다. 똑같은 수험생활을 1년 동안 하기 싫었다. 아버지와 부딪히기 싫어서 친한 친구 집에 밤늦게까지 있었다. 애꿎은 친구에게 하소연만 했다.
이제 고작 19년 살았는데, 내 인생은 이제 실패했다고 여겼다. 계속 재수하라는 아버지의 잔소리에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맞받아쳤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불효자다. 중간에서 중재하는 어머니만 힘들었다. 여동생도 험악한 집안 분위기에서 견디지 못했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점수에 맞추어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합격 후 아버지에게 등록금을 달라는 나쁜 아들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나는 명문대에 가지 못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매일 술만 마시고 놀기만 했다.
친구들에게 매일 하소연하자 같은 과 동기와 선배가 그만하라고 다그쳤다. 이미 끝난 결과를 뒤집고 싶으면 다시 수능을 보던가 싫으면 지금 현실을 인정하라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기에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순탄하지 않았다. 발주처와 지자체 공무원의 갑질,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철야근무, 일 대비 많지 않는 연봉, 몇 차례의 임금체불 등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의 약한 멘탈과 서툰 감정이 더해져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풀리지 않냐고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했다. 이런 마음으로 살다가 결국 10년전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10년전 딱 이맘때쯤 이제 정말 내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대출만 잔뜩 남았다. 내 이름으로 된 차도 집도 없었다. 서울 하늘 아래 저렇게 많은 사무실이 있는데, 내가 일할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을 남겨두고 나 혼자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도 참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아직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는데, 왜 자꾸 실패자라고 나 자신을 치부했는지.
인생을 포기하고 싶던 끝자락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만났다. 미친 듯이 읽고 내 삶에 적용했다. 미친 듯이 매일 쓰고 또 썼다. 지식만 가득찼던 내 머리에 인생에 대한 지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자신의 고민은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여 살아가는가가 중요했다. 인생 자체가 롤러코스터인데, 항상 좋은 일만 있는 줄 알았다. 살아보니 나쁜 일이 더 많은 게 인생이었다.
지금 힘든 당신, 한번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다시 거기서 출발하면 그만이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내 인생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긴 인생에서 최후는 없다. 100번 실패해도 한 번 성공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생각하자. 인생은 원래 그런 거니까.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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