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를 마치고 대문을 열었더니 이제 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낮에는 아직 덥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약간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가을이 오는 것을 느낀다. 봄과 가을이 짧아지긴 했지만 3월과 4월, 9월과 10월은 주말에 시간이 되면 동네에 있는 봉화산에 가끔 오르곤 했다. 다른 산에 비해 높지 않지만 그래도 급경사가 많다 보니 올라가는데 만만하지 않다. 떨어진 체력도 다시 끌어올리는 데 등산만큼 좋은 것이 없다.
처음 산에 오를 때는 그 상쾌한 공기와 나무 냄새가 좋아 기분 좋게 올라간다. 오르다 보면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지니 앞만 보고 가게 된다. 정상까지 가야 하다 보니 옆에 있는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앞에 있는 사람을 따라가거나 계단 또는 등산로를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이 전부다. 만약 단체로 산에 갔다면 아마 중턱부터 정상까지 조용하게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참고 견디면서 정상까지 왔다. 정상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앞에 보인 멋진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힘들게 올라와서 지치지만, 그 풍경을 보면 마음이 다시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정도 정상의 기분을 느끼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산을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수월하긴 하다.
내려가다 보니 아까 올라올 때 보지 못한 풍경이나 꽃,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렇게 멋진 것이 있었나 할 정도로 감탄하는 경우도 생긴다. 나도 내려오면서 올라올 때는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서 갑자기 소리지르기도 했다. 너무 예쁜 꽃이 내 앞에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그 꽃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이 다시 사르르 녹기 시작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것만을 보고 돌진하기 시작한다. 그 목표라는 산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주위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성공을 향해 부지런히 한 발씩 옮기면서 올라간다.
성공이라는 정상에 도착하니 이제야 숨 좀 돌린다. 다 이루었다고 스스로 느낀 후에야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려갈 때가 돼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꽃이나 나무는 그대로 있을지 모르나 주변에 있었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내려갈 때 손을 내밀어 보지만 다시 볼 수 없다. 이미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다.
요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회사도 다니면서 그 외 나머지 시간은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글만 썼다. 작가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족과 친구, 지인을 등한시한 적이 많다. 물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다가 주변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희생만 강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 든다.
8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올해는 조금씩 내려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잠시 쉬어가면서 내려오다 보니 조금씩 가족에게 소홀했던 것도 많이 보인다. 좀 더 살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조급하게 올라갔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오히려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다시 올라가게 되면 이제는 천천히 주변도 살펴보면서 더 잃어버리기 전에 아름다운 사람들을 더 찾아보자.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내려갈 때 보았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이번 주말 시간이 되면 천천히 꽃도 보면서 올라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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