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집은 다 가는데, 왜 나는 못 가요?”
“야! 너 아버지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나도 대학원이나 유학 가고 싶다구요. 더 공부하고 싶은데 왜 안 되는 거에요?”
“지금 형편이 안 좋자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모님께 또 한 번 모진 말을 퍼부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성향 자체가 누가 뭐라고 하면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조금이라도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하거나 조언하면 일단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경청하지 못하고 또다시 들이받아 버렸다. 욱하는 성질을 버리지 못했다. 아버지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집에 있으면 너무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다. 친구와 약속을 잡아 술집으로 향했다. 소주 한 잔 받으면서 왜 나에겐 이런 시련만 겪냐고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친구가 나에게 부모님에게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호통쳤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가 야속했다. 집에 돌아오니 이미 부모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결국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지원 하나 못해주는 집이 야속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시간이 한참 흐르게 되었다. 32살에 결혼하고 이듬해 첫째 딸이 태어났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를 키운 아버지가 자꾸 생각났다. 아버지에게 했던 모진 말이 자꾸 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사실 예전에도 그렇게 아버지에게 말대꾸하고 버릇없게 굴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면 너무 죄송했다. 아버지께 직접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술자리에서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마지막 한 잔 남기고 나는 불효자라고 소리치며 친구들 앞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많다.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게 되었다. 대학원이나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나는 정말 대못을 박았다. 거꾸로 우리 아이들 중 한 명이 나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했을 때 나도 만약 못해 줄 상황이 생기면 얼마나 원망을 들을지. 사실 지금 내 입장에서 아버지보다 더 아이들에게 잘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렵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가끔 왜 그렇게 귀에 잘 들어오는지.
어떤 분야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수강생 입장에서 강사에게 배우고 나서 질문하게 되었을 때 대답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야속했다. 또 제대로 피드백하지 않으면 거꾸로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내가 강의하는 강사 입장이 되어보니 원래 강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헨리 마시의 <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암에 걸려 환자가 되고 나니 완전히 잊고 지냈던 수많은 환자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내가 불안과 불행, 고립감을 느끼게 되자 비로소 내 환자들도 그동안 얼마나 불행했을지 알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그들의 마음을 모른척하려고 했었는지 깨달았다.”
의사인 시절에는 환자의 마음을 잘 몰랐지만, 본인이 암 환자가 되다 보니 그제서야 환자의 마음을 잘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누구나 그 입장이 직접 되어보지 못하면 잘 모른다. 자신이 그 입장이 되고 나서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강사가 되고 나서야 수강생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좀 더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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