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도 바쁘게 업무 처리 중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조용했던 사무실이 갑자기 시끄럽다. 나보고 상사가 오더니 회사 인트라넷이 뜬 게시물을 봤냐고 물어본다.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하니 빨리 확인해 보라고 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게시물을 열었다. 인사 명령이었다.
“황상열 부장/대기발령”
대기발령이 뭐지? 포털 사이트를 열고 검색했다. “일시적으로 당해 근로자에게 직위를 부여하지 않고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잠정적인 조치”라고 나온다. 아! 이제 이 부서에서 일을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상사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가자고 했다. 뭔가 머리가 하얘졌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분명 이 결과가 있기 전부터 조짐이 있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다.
상사와 나는 회사 뒤에 있는 식당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상사가 막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한 잔 따라준다. 뭔가 억울했다. 분명히 나에게도 원인이 있지만, 갑작스러운 대기발령은 당황스러웠다. 한 잔 한 잔 마시다 보니 조금씩 취기가 올랐다. 서러운 감정이 북받쳤다. 뒤늦게 회사 동료와 후배도 와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이 한마디씩 힘내라고 위로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데, 10여 년 전에 겪었던 해고 경험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조직에 해가 되는 존재인가? 그래도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고, 내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서 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오는 결과는 이것 뿐인가? 회사 생활도 눈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나? 정치질도 못해서 라인을 타지 못한 건가?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머리가 아팠지만, 딱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불확실하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글을 쓴 지도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세월이다.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은 지나간다. 그 세월 속에 오롯이 내 글이 쌓였다. 책의 형태로 바뀌어 서점과 도서관에도 있다. 온라인에는 내 블로그 등에 삭제하지 않는 이상 잘 남아 있다. 지금도 내가 쓴 글은 온오프라인에서 돌고 돌아 누군가는 읽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그리 유명하지 않다. 여전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니 소수만 알아주는 무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보다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 잘 되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다. 그들의 활발한 활동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다. 물론 조금씩 강의와 칼럼도 쓰고, 여러 활동을 직장을 다니면서 병행하고 있다. 전업 작가와 강사로 살고 싶은 꿈이 있기에 도전은 멈추고 있지 않다.
지금은 국민MC 라고 불리우는 유재석도 데뷔 후 정상에 오르기까지 10년이 넘은 시간을 무명으로 보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딱 한번 기회를 주시면 잊지 않고 감사하겠다고 기도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매일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자신을 불러주는 사람에게 보답하고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불살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계속 조금씩 시도했다. 그것이 모이고 모여 결국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물론 몇십 년을 도전해도 안 되는 경우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생각이다. 처음에는 책만 나오면 유명한 작가와 강사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콘텐츠도 좋아야 하고, 팬덤도 있어야 하며, 일단 운도 있어야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얻어지는 결과이다. 여전히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한번 쯤 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살아있는 한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상관없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불평 불만만 하고 있는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에 지금 힘들다고 해도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인생의 성과를 냈던 모든 사람은 이런 세상의 불확실성을 알고 있다.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글 한 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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