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라는 영화가 있다. 이정재, 최민식 등 기라성 같은 배우가 많이 나왔지만, 조연으로 나왔던 박성웅이란 배우의 임팩트도 상당히 컸다. 마지막 장면에 박성웅이 죽는 장면에서 유행어가 탄생한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이네.” 이 말을 남기고 장렬하게 사람들에 의해 떨어진다. 조직 폭력배를 미화한다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새로운 한국형 누아르 장르를 개척했다. 개인적으로 몇 번 돌려보면서 참 재미있게 봤던 영화다.
가끔 오프라인으로 기관이나 학교 등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글쓰기가 궁금해서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강의에 집중한다. 나를 잡아먹을 기세다. 그런 눈빛이 좋다. 나도 지금까지 내가 배운 지식과 익힌 경험을 모두 나누어 주고 싶다. 열심히 떠들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처음 이글거린 그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물론 듣는 수강생 중 한두 명은 이제 금방 쓸 수 있겠다고 웃으면서 강의장을 떠난다. 글쓰기 연습을 하려면 바로 강의가 끝난 후 후기를 써야 한다고 부탁한다. 수강생 중 반은 나중에 쓰겠다고 하면서 나간다. 그런 사람 중에 후기를 쓰는 사람은 없었다. 내 말을 끝까지 잘 따라준 수강생은 후기도 정성스럽게 써준다. 후기를 받고 나서 마지막에 물어본다.
“이제 바로 집에 가면 오늘 자기 전에 글 하나 쓰실 수 있겠지요?”
대답이 없다. 다시 똑같이 물어본다. 여전히 “예”라는 대답은 없다. 조용하다. 당장 못쓰는 이유는 지목해서 물었다. 지목당한 수강생이 대답했다.
“수업 듣고 나니 피곤하네요. 집에 가면 바로 잘 것 같아서요. 좀 쉬고 나서 쓰려구요.”
“그냥 주무시겠네요. 내일도 못 쓰실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들은 수강생은 같이 웃는다. 아마도 글을 쓰는 일은 한참 후에 걸릴 것 같다. 다른 한 사람을 다시 지목해서 똑같이 질문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요. 아이가 좀 더 크면 쓰려구요.”
“아이가 몇 살인가요?”
“초등학교 3학년과 6살이요.”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지만, 그래도 혼자서 할 일은 할 수 있는 나이인데요? 아이들 학교나 유치원 보내고 남는 시간에 쓰세요.”
“집중이 되지 않아요. 아이들이 중학교는 가야 시간이 날 것 같아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몇 분 더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쓸 이야기가 없네요.”,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서 쓸 여유가 없네요.”,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글 쓰는 시간이 있을까요?” 등이다. 그러면 대체 왜 글쓰기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일까? 그렇게 글을 쓸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물어보겠다. 당신이 글을 쓰기 좋은 날은 과연 언제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거나 부정적이라면 당연히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단지 글쓰기나 책 쓰기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접근하다 보니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나도 직장인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여 9시부터 6시~7시까지 일한다. 출장도 많다. 퇴근하면 빨라야 저녁 8시다. 저녁 먹고 아이들 챙기다 보면 벌써 10시다. 글 하나 써보려고 하는데, 눈이 감긴다. 몸도 천근만근이다. 키보드에 손을 올렸는데 타자를 칠 힘이 없다. 그래도 작가가 되고 싶어서 어떻게든 하루 한 편은 쓰고 싶었다. 말도 되지 않는 글이지만,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썼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 좋은 날은 언제일까? 답은 다 알고 있다. 너무 뻔해서 뭐라 할지 모르겠다. 생각난 그 시점부터 바로 지금 쓰는 것이다. 아니면 어떻게든 하루 중에 자신이 집중이 제일 잘되는 30분이나 1시간 정도를 비워놓고 짧게라도 쓰면 된다. 지금 당신이 머문 시간과 공간이 가장 좋은 글쓰기 타이밍이다.
핑계나 변명하지 말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못 쓰더라도 일단 지금부터 한 줄이라도 쓰자. 하루 한 편 쓰지 않는다고 죽지 않지만, 그래도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오늘 자기 전에 2~3줄이라도 끄적이자. 오늘도 글쓰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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