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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Sep 14. 2024

몸은 여기에 있는데, 머리는 엉뚱한 곳에 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한 남자가 대낮부터 막걸리를 자기 목에 쏟아붓고 있다. 안주는 김치 몇 조각이 고작이다. 하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중이다. 술이 떨어지자 주모에게 또 소리친다.      


“주모 술 한 사발 더 가져와!”

“아니, 저 양반은 유배지 와서 자꾸 술을 달라고 하는 거야?”

“그냥 달라면 주지. 말이 왜 그리 많냐? 주모.”

“이 양반아, 돈을 내고 먹는 것도 아니고, 죄인이면 죄인답게 조용히 있으시오.”

“아니, 주모까지 나를 무시하는 거요? 에이, 되었소. 그냥 두시오.”     

주막 구석에 마련된 조그만 방으로 들어왔다. 구석에 앉았는데, 자꾸 한숨만 나온다. 언제 여기서 나갈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누웠다.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며칠이 지났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없었다. 방한 구석에 망가진 책상이 보인다. 책상다리만 잠시 손을 봤는데, 쓸만하다. 가운데 책상을 가져다 놓고 앉았다. 주모에게 종이와 붓, 먹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주모는 그래도 정신을 차린 그에게 바로 문방사우를 갖다주었다. 그는 이렇게 처음 붓을 들어 종이에 적었다.    

  

“몸이 여기에 있는데, 자꾸 머리는 한양에 있었다. 왕과 함께 했던 좋은 날이 그립다. 이젠 그 시절은 없다. 내 몸은 이제 강진에 있다. 여기서라도 할 일을 찾아야 살 수 있다. 백성이나 관리에 도움이 되는 글이라도 쓰면 시간은 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은 그는 하루 종일 글만 썼다. 하도 앉아 있다 보니 건강에 무리가 갔지만, 멈추지 않았다. 글을 쓰는 지금 그 순간에만 집중했다. 18년 동안 약 600권의 책을 썼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아,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 일을 하는 걸까?”

책상에서 계속 서류 작업을 하고 있지만, 표정은 좋지 않다. 클라이언트나 공무원과 협의를 가는 발걸음도 무겁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 하기 싫은 일을 계속 붙잡고 있다. 머리는 다른 일을 찾아보고 전직을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몸은 여기에 있지만, 머리는 또 다른 곳에 가 있다.      


그런 생각을 20년째 하고 있다. 부끄럽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유부단하다. 선뜻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과감하게 내 인생을 믿고 과감하게 던질 필요도 있는데, 오락가락하는 내가 싫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작년 말부터 실직, 이직, 사기 등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참 힘들었다. 그래도 거기에서 뭔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어 좋았다.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 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하는 본업에 더 전념하고 몰두한다. 글을 쓰는 작업이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그 순간만큼 집중하기로 했다. 자꾸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말고, 오지 않은 일에 불안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바로 정약용이 말한 “몸은 여기에 있는데, 머리는 엉뚱한 곳에 있다.”과 일맥상통한다.      


자꾸 지금 여기를 잘 살지 못하는데, 당연히 미래를 잘 살 수 있을까?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잠시 그 고통이 너무 깊어서 잠시 피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그 대가는 꼭 치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여기서 살지 못하면 다른 장소, 다른 회사 등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      


인생에서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지금 밖에 없다. 오늘 하루 깨어있는 인생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몸은 지금에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보니 당연히 인생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다. 인생을 사는 지금 이 순간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아마 더 좋지 않은 순간이 많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작게나마 즐거운 순간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하찮더라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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