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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Sep 16. 2024

인생의 유일한 길은 그저 통과하는 것이다

(the only way out is through)


“수학 문제 좀 풀어봐. 이것은 이렇게 푸는 거야.”

“아! 몰라. 다 모르겠어.”     


연필을 집어던지다 아내에게 또 혼난다. 올해 4학년이 된 둘째 아들은 수학과 과학을 싫어한다. 머리로 생각하는 자체를 싫어한다. 수학은 그 문제가 나오기까지 어떻게 도출되는지 그 과정을 중시하는 학문이다. 그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문제를 풀 수가 없다. 답이 나오기까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참지 못한다.      


아들은 감정이 상해서 문제집을 덮는다. 다시 풀지 않는다. 아내가 달래도 보고 혼내기도 해보지만, 쉽지 않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나도 한 번 설명했다가 서로 감정만 상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아들과 달리 혼자 앉아서 하는 공부를 좋아했다.      


다만 비슷했던 점은 나도 생각하는 자체를 싫어했다. 수학 문제는 달달 외워서 풀었다. 그 문제의 원리를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 그 답까지 갈 수 있는지 차근차근 생각해서 풀면 되는데, 그 과정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아들이 수학 문제 풀다가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지만, 한편으로 애처롭기도 하다.     


달달 외우는 과목만 시험을 잘 봤다. 생각하지 않고 정리 후 달달 암기만 잘하면 되니까 너무 편했다. 어려운 문제는 건너뛰었다. 그 시간에 쉬운 문제를 더 맞히면 더 이득이라 판단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 편법을 찾아 좀 더 쉽게 돌아가는 길을 많이 선택했다. 그러자 정작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생각하는 것조차 싫었다. 아마도 이런 점들이 누적되다 보니 인생의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인생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인생에서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 아내를 보면 내 기준에 큰 문제가 생겨도 척척 해결책을 찾아서 그냥 헤쳐 나간다. 나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어 참 미안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 문제와 마주하여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나가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나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참 많은 인생의 파도를 만났다. 센 파도도 있었다. 약한 잔잔한 파도를 만난 적도 있다. 아마도 인생의 내 문제를 정면으로 똑바로 마주한 것은 30대 중반이었다. 다니던 네 번째 회사에서 해고당한 이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사회생활 시작한 지 8년도 되지 않았는데, 4곳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저 힘들다 싶으면 도망가기 바빴다. 머리 아픈 문제를 만나면 그저 피하고 싶은 본능이 먼저 나왔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게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수학이나 과학을 왜 싫어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는 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보다 고차원적이다. 아니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실제로 경험해야 알 수 있는 점이 더 많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여 사회생활 하는 결혼하고 부부가 된다.      

아이 낳아 육아를 시작한다. 모두가 처음이다. 누가 처음부터 알려준 적이 없다. 그저 문제를 마주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헤쳐나가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그랬다. 처음 입사하고 일이 서툴렀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사수에게 혼나면서 일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참 힘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배워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었기에 버텼다. 그 시간을 버티니까 다음 문을 만날 수 있었다. 계속 통과하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20년 만에 지금 회사에서 이사로 진급했다. 임원이 되었으니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주어진 문제 앞에서 이제는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예정이다.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잘 극복했던 경험으로 끝까지 해 볼 생각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5줄 이상 쓰지 못했던 내가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썼다. 그렇게 또 버티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무명 작가이지만, 읽고 쓰는 인생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도 기적이다. 근사한 인생은 그저 나와 만나는 문제를 마주한 후 그 과정을 겪어야 만날 수 있는 특권이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 끝은 언제나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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