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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 00부터 점검하자!

by 황상열

11년 차 글을 쓰는 직장인 작가다. 매일 한 편씩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고 있다. 새로운 책 원고를 쓰기도 하고, 바쁠 때는 다이어리에 오늘 있었던 일이나 감정 등을 2~3줄로 기록한다. 향후 사용할 책 원고를 SNS에 같이 올릴 때가 대부분이다. 오늘도 아침 일찍 업무 차 강릉으로 출장 왔다가 시간이 남아서 글을 쓰고 있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매일 한 편의 글을 조금씩이라도 쓰는 것이다. 쓰지 않으면서 작가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보면 개인적으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사정이 다 있겠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으면 응당 글을 쓰는 삶을 사는 것이 맞다. 그래서 “매일 쓰는 사람이 진짜 작가입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글을 썼다. 술을 마시고 돌아온 날도 블로그에 포스팅했다. 2015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매일 쓰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몸이 부서지고 아파도 노트북을 켜고 한 글자라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린다. 그런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때 썼던 글을 나중에 다시 보면 얼굴이 붉혀지거나 부끄럽다.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 나는 20대 후반의 패기 넘치는 사원이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던 시기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서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던 시기다. 꼭 술 마시고 집에 가서 바로 자지 않고, 싸이월드에 그 날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감정을 마구 적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읽어보면 이불킥 하고 싶을 정도의 글이 많았다.


컨디션이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왜 그럴까? 첫째, 판단이 흐려진다. 감정에 휘둘리게 되면 불필요한 말이 쏟아진다. 순간의 감정으로 글의 방향이 달라지고 왜곡된다.


둘째, 후회가 남는다. 쓸 당시엔 속이 후련해도, 나중에 보면 지우고 싶은 글이 된다. 특히 타인을 공격하고 욕하는 글이라면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글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든다. 쓰는 행위가 감정 정리가 아닌 감정 반복이 될 수 있다. 컨디션 난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쓰지 말고 잠시 멈추는 용기가 꼭 필요하다. 글은 내가 가진 감정의 잉크로 쓰는 일이다. 기분이 상한 날에 쓰는 글은 그 글에 감정이 들어가고 날이 서 있다.

그래서 나는 요새 글을 쓰기 전 내 기분과 컨디션을 먼저 점검한다. 좋을 때 써야 내 글에 들어가는 감정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 상황과 상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거울이다. 몸과 마음이 가볍고 상쾌할수록 내가 쓰는 단어와 문장도 맑아진다.


컨디션이 좋을 때 글을 쓰면 우선 집중력이 살아난다. 집중력과 몰입이 좋아지고, 판단력도 명확해서 글의 방향과 메시지가 선명하게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둘째, 감정의 균형이 잡힌다. 나 자신이 불안하거나 예민한 날은 글도 날카로워진다. 차분한 마음이 독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셋째, 내가 쓰는 글의 깊이가 깊어진다. 몰입하기 때문이다.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내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여유가 있어서다.


11년 차 작가로 살다 보니 내가 쓰는 글 하나가 많은 사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더 깨닫게 되었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거꾸로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좋은 글은 결국 좋은 나로부터 나온다. 좋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해야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글 쓰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부터 먼저 점검하자. 좋을 때 쓰자. 좋지 않으면 잠시 쉬어도 된다. 오늘 글을 쓰고 싶다면, 나부터 먼저 다정하게 돌보자. 글은 그 사람의 감정이 들어간다. 자신의 좋은 감정과 마음, 몸으로부터 나오는 기운으로 진심을 담아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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