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후반이 된 요새 내 머릿속엔 하나의 질문이 계속 맴돌고 있다. 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내 삶과 글이 과연 일치하고 있는가? 내가 쓰는 대로 살고 있는가?” 누군가가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선뜻 “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망설이게 되는 나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럽다.
11년 동안 글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르게 행동한 적도 많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매번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못한다. 어떤 날은 분노가 치밀어서 괜히 가까운 가족에게 화풀이한다. 지난 월요일도 업무와 개인적인 일로 머리가 아팠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아들이 맛있는 과자를 사러 가자고 웃으면서 다가왔다. 갑자기 나는 아들에게 “아빠 피곤해서 힘들어!” 소리쳤다. 아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예민하게 반응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을 잘 다스려서 좋은 말만 하자고 며칠 전 글을 썼다. 하지만 그 글을 쓴 당사자가 감정 실어 좋지 않은 말을 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항상 일을 저질러 놓고 주워 담기 바빴다. 그것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발생하기도 한다.
왜 삶과 글이 일치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있어 보이기 위해 실제의 내가 아니라 포장된 나를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다 보니 삶과 글 사이에 간극이 생겼다. 또 내 삶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지 않아서 내 글은 이상적인 문장과 단어로만 가득찼다. 현실과 동떨어진다.
은연중에 타인과 비교하게 되니 그들의 성공, 삶 등을 의식하다 보니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맞춘 글을 쓴다. 책상에서 내 글을 쓰지만, 책상을 떠나는 순간 글과 삶은 분리된다. 이렇게 되면 내가 쓴 글은 머릿속에서 나온 기록일 뿐이다. 실제로 내가 삶에서 느끼고 경험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언어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사실 작년부터 글을 쓰는 게 두려웠다. 삶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그저 남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서 쓴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타인을 위로하고 도움을 준다고 명목하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녹여서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아마도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못한 점은 아마도 내 삶이 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 순간부터 내 삶부터 바로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11년 넘게 글을 쓰면서 많은 작가와 강사 등을 만났다. 아마도 나를 한 번이라도 마주치거나 스친 사람들은 나의 글과 삶이 다르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래서 아마도 실망하고 질려서 관계가 계속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관계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리 중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보내면서 삶과 글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도 같이 하고 있다.
삶과 글이 일치하면 좋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글과 삶이 같아지면 타인에게 신뢰가 생긴다. 내가 직접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를 진심을 담아 문장으로 옮긴다면 많은 독자에게 여운을 줄 수 있다.
둘째, 글이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도 11년 넘게 매일 글을 썼다. 그 매일의 기록이 쌓이다 보니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살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오히려 글을 쓰면서 나를 제대로 돌아보게 되고, 삶도 일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셋째, 삶과 글이 닮아갈수록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썼지만, 이제는 타인의 감정과 문제에 대해 함께 나눌 수 있는 글을 쓴다. 아무래도 글쓰기 자체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이유가 많이 있지만, 위 세 가지가 그래도 삶과 글이 일치되었을 때 주는 좋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나는 글을 써야 내 삶을 그나마 좋게 유지하지 않을까? 글쓰기 덕분에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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