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 엔지니어로 일한 지 벌써 만 20년이 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한번 바뀐다는데, 벌써 두 바퀴를 지난 세월이다. 처음 일할 때가 2004년이다. 그 해 태어난 친구들이 벌써 대학생이다. 사실 취업 하기 위해 전공을 살린 케이스다. 학교 다닐 때부터 전공 공부는 재미있지만, 엔지니어링 업무가 힘들다고 익히 들어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대생이 다른 직종으로 가기에는 너무 좁았다.
도시계획 엔지니어링 일은 복합적이다. 기술직이지만 발주처와 지자체 공무원과의 협의가 필수다. 사실 협의도 중요하지만 발주처와 지자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게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자료를 준비해서 가져가도 그들의 입김에 따라 수시로 계획안이 바뀐다.
이상하게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들이 뭐라 해도 나는 감정적으로 받아치는 게 어렵다. 감정 조절이 어려웠던 나는 그들의 잘못된 말투와 지시에 곧이곧대로 반응했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 감정 소모가 컸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다른 직종으로 옮겨 볼까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잠시 중간에 시행 업무를 하는 파트에 있었지만, 돌고 돌아 다시 본래 일을 하고 있다.
20년이 넘어가니 이젠 이 일도 지친다. 내가 유독 예민하게 반응해서 그런지 업무 시간에는 늘 긴장 상태다. 에너지 소모도 만만치가 않다. 그런 긴장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항상 화가 억눌러 있다. 그것이 퇴근하고 나서 집에 오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표출이 된다. 참 좋지 않은 버릇이다. 어제도 하루 종일 회사 업무로 긴장 상태로 있다보니 머리가 아팠다. 그 감정을 놓고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집에 와서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짜증을 냈다. 꼭 그럴 때 보면 머리가 너무 아팠다. 뇌가 과부하 상태로 이미 몸도 예민 모드로 들어가 있다. 날씨까지 더워지니 더 그랬다. 힘든 아내와 말싸움하게 되었다. 마음이 힘들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받았다. 왜 이렇게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표출하게 되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20년 넘게 이 업무를 하다 보니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오래 있었다. 도시계획 프로젝트 협의. 발주처 대응. 민원, 일정 압박 등으로 항상 경계하고 준비된 상태로 있어야 한다. 이는 뇌의 편도체를 과하게 활성화시킨다. 누군가 조금만 자극해도 예민 반응이 올라온다. 특히 나는 금주하기 전 술을 많이 마시다 보니 그런 영향도 크다.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 그동안 너무 참고 감정을 억눌렀다. 상처받아도 그냥 넘겼다. 하고 싶은 말도 삼켰다. 가족에게조차 표현하지 못했다. 이렇게 억누른 감정은 쌓이고 쌓여 다른 방식으로 터져 나왔다. 술을 마시면 취해서 나오거나 두통, 짜증, 감정 기복, 무기력 등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로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항상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그렇다 보니 내면이 조금만 흔들려도 예민하게 다시 반응하게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오래 고민했다. 고민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니 변화가 없었다. 올해는 어떻게든 이 예민함도 좀 고치고 싶었다. 첫 번째로 예민한 나를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알아차리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지금 기분이 좋지 않네.”, “그 사람의 기분까지 내가 알 수 없어.” 등.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요새 새로 추가한 게 다이어리에 하루 중 감정이 확 올라온 순간을 1줄 메모로 쓰고 있다. ‘6/9 오전 – 000와 통화 후 짜증. 이유 : 갑작스러운 수정 요청’ 등으로 말이다. 기록하면 감정은 좀 사라진다. 객관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정말 참지 못할 때는 심호흡 후 잠시 쉬고 단호하게 내 의견을 표출한다. 바로 반응하기 않기 위해서다.
도시계획 엔지니어 일이 밖에서 보면 멋지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기술+감정노동+조율+서류 작성 등 복합적이다. 예민해질 수 밖에 없지만, 이제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면서 잠시 쉬어가고자 한다. 이렇게라도 글을 쓰니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감정은 흘려보내고, 좋은 것만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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