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나고, 다시 설날연휴가 시작되었다. 어린시절 설날은 겨울방학이다 보니 아버지 고향인 영주 큰집에 항상 내려갔다. 5남매의 셋째이신 아버지는 어린시절 혼자 서울로 유학을 오셨다. 지금 가는 큰집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다 보니 큰집까지 가려면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마을로 들어가야했다.
차도 없던 시절이라 가족들과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기차를 타고 우선 영주역까지 이동한다. 거기서 작은 아버지나 사촌 형이 먼저 기다렸다가 픽업해서 같이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도착하면 역시 큰어머니가 방금 끓여놓은 떡국을 차려주면 배고픈 마음에 허겁지겁 먹었다. 그 시절 큰집은 가운데 마당이 있고 ㅁ자로 생긴 한옥이었다. 가장 오른쪽에 할아버지가 기거하신 사랑방이 있었다. 그 앞에 소 한 마리가 들어간 축사가 있고, 화장실은 정말 집 밖에 멀리 위치했다. 역시 휴지를 들고 가야 하는 재래식 화장실이다.
역시 도착한 날은 저녁이기 때문에 밥을 먹고 나는 할아버지가 계신 사랑방에서 아버지와 셋이 지냈다.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오는 손자가 귀엽다 보니 항상 손에 얼마씩 세뱃돈이라고 쥐어주시곤 했다. 아궁이에 구운 고구마를 먹으며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다 잠이 들곤 했다.
아침이 되면 사촌형과 얼어버린 들판으로 향한다. 나무로 만든 썰매를 타고 열심히 얼음 위를 날아다닌다. 지금의 눈썰매도 재미있지만, 그 시절 썰매도 나름 스릴이 있다. 한참을 얼음을 지치며 놀다보면 눈이 내리고 있다. 그 눈이 쌓이면 타던 썰매를 잠시 두고 동네 형들과 같이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
설날 아침이 되면 온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차례대로 세배를 드렸다. 세배를 드리는 것보단 세뱃돈 받는 것이 더 좋았다. 할아버지부터 사촌큰형까지 모두 찾아서 절을 하고 돈을 달라고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이제는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고 돈을 주는 입장이 되었으니 참 세월이 빠르다.
매년 돌아오는 설날이지만 올해는 조금 감정이 남다르다. 음력 새해를 맞아 아직도 고치지 못한 나쁜 습관은 버릴 수 있도록 하고, 망설이던 일에는 과감하게 도전해 보고자 한다. 그것이 작심삼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해 나의 과제다. 오늘은 본가에 계신 부모님과 여동생 내외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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