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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의 눈물

by 황상열

어린 시절 설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면 세뱃돈을 받았다. 학년이 올라갈때마다 그 액수는 늘어난다. 초등학교 6학년때는 세뱃돈으로 20만원을 넘게 벌었다. 지금 시세로 따지면 100만원은 족히 되는 금액이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설날이 끝나고 친구들끼리 세벳돈 얼마 받았냐고 서로 물어본다.


“난 할아버지가 5만원 주셨다!”

“난 할머니가 1만원 주셨는데..부럽다.”


돈을 누가 더 많이 받는 것도 경쟁이 붙었다. 더 많이 받은 것이 확인되면 괜히 내가 더 우쭐해진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유독 말이 없는 친구가 보인다. 이야기를 듣고만 있고, 표정은 어둡다. 지금도 그렇지만 눈치 없이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어본다.


“얼마나 받았어?”

“............!”


대답이 없다. 나를 슬쩍 한번 쳐다보더니 아이씨! 이러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좀 당황한 나는 왜 저러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들어오는 그의 눈은 조금 충혈되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나는 괜히 물어본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다.


그런 일이 있은지도 모른채 시간이 흘렀다. 2000년대 초반 동창을 다시 찾는 사이트가 인기였다.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10년이 넘는 시간을 못보던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술자리에서 그가 나에게 물어본다.


“기억나냐? 그때 나한테 세뱃돈 얼마 받았냐고 물어본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잠깐만... 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 내가 그냥 나갔지. 왜 그랬는 줄 아냐? 사실 나 부모님이 안 계셔서 내려갈 고향도 없었어. 같이 살던 할머니가 날 키워주셨는데.. 세뱃돈 줄 형편도 되지 않았구. 나는 그냥 너나 다른 친구들이 부럽더라.”

“아.. 그랬구나. 미안하다. 이제야 사과할게. 눈치없이 나도 물어봤구나.”


괜찮다 하면서 웃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당연히 설날이 되면 세배를 하고 돈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어린 나이에 친구 입장에서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의 술 한잔 받으면서 오히려 내가 눈물이 났다.


그도 부모님이 계셨다면 당연하게 매년 돌아오는 설날에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으며 기뻐했을 것이다. 설날인 오늘도 이 당연함을 못 누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설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설날 #세배 #세뱃돈 #모두행복하자 #에세이 #황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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