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신입생 시절이던 1997년만 하더라도 친구와 연락수단이 삐삐와 공중전화였다. 입학하고 나서 어머니를 졸라 검정색 삐삐를 구입했다. 집전화가 아닌 처음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가진 번호를 받았다. 앞자리가 012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상대방 삐삐에 음성메시지를 남기는 형식이었다. 조금 앞서가는 동기들은 기지국 앞에서 터지는 시티폰 또는 휴대폰 초기 모델인 PCS를 들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삐삐만 들고 다니던 나는 휴대폰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의 첫 휴대폰은 군대 제대를 얼마 안 남기고 나간 말년휴가때 그 당시 애견미용사로 일하던 여동생이 사주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원수처럼 싸웠던 남매 사이였지만, 입대하고 나서 힘들때마다 의지가 되었던 동생이다. 그녀는 대학을 다니다가 2000년 초반에 유망직업 중의 하나인 애견 미용일을 배우고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휴가때 동생은 나를 휴대폰 가게로 데려가더니 그때 처음 나왔던 흰색 스카이 폰을 사주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나이는 어리지만 누나 같은 면이 있다보니 지금도 많은 대화를 나누는 여동생이다.
흰색 스카이 폰이 나오긴 전까지 휴대폰 벨소리가 하나의 음으로 나왔다. 스카이가 처음으로 4개의 혼합된 음으로 벨소리가 울리자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동생 덕분에 제대 후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술자리에서도 테이블에 딱 올려 놓고, 사람들이 보고 알아주길 바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관종이었던 건 사실이다.
휴대폰 기술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더니 2008~9년쯤 스티브 잡스의 혁신으로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폰 하나로 인터넷 검색, 사진 촬영, 앱 사용 등으로 기존 휴대폰 판도를 아예 바꿔버렸다. 그때 처음 샀던 스마트폰이 LG 옵티머스 제로였다. 처음 스마트폰을 쓸 때 정말 신세계였다. 앱을 깔아보기도 하고, 인테넛을 전화기로 한다는 사실 자체도 참 놀라웠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이제 스마트폰도 몇 번의 교체를 하면서 기술적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만 될 뿐이지 예전처럼 큰 혁신은 없다고 했다.
2월초 약정이 끝나 다시 한번 스마트폰을 바꾸었다. 예전에는 화려하고 비싼 폰이 좋았지만, 지금은 비싸거나 싸거나 품질에 큰 차이가 없어 오래 써 볼 생각이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에게 연락이 가능하다. 불과 20년전만 하더라도 삐삐에 음성을 남기거나 듣기 위해 공중전화를 달려가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카톡 메신저로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아 서로 직접 대화를 하게 도면 어색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20대 시절 삐삐에 음성메시지가 들어오면 당장 공중전화에 가서 확인하고, 다시 음성을 남기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공중전화로 가는 길에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뛰어간 적도 많다. 그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지금은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오늘 집에 가면 예전에 쓴 폰이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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