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6학년 쯤 시절로 기억한다. 그 해 가을에 엄청난 비가 내렸다. 폭우가 계속되면서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 안양천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둑이 없었다. 퍼붓는 비에 하천은 점점 불어나고, 하수도도 역류하기 시작하더니 도로가 침수되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도로보다 높은 곳에 위치했고, 메인도로가 경사가 있다보니 비가 와도 위에서 아래로 흘러 물에 잠기지 않았다. 우리 아파트 한 블록 건너에 도로와 같은 높이에 위치한 새 아파트는 이미 지하까지 물에 잠기고 있었다.
폭우가 내리면서 도로 침수가 시작되기 전 학교에서 이미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나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들과 오락실에 들렀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몰두했다. 그렇게 2~3시간이 훌쩍 지났다. 밖에 나오니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엄청난 양이 내리고 있었다. 오락실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우산을 펴고 가는데 오는 비에 옷이 거의 다 젖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야! 너 어디에 있다가 지금 오는거야?”
누군가 소리치며 내 머리를 한 대 쥐어 박는다. 순간 화가 나 쳐다보니 그때 지방에서 근처로 이사왔던 사촌형이다. 왜 때리냐고 물어봤더니 지금 너 때문에 집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해서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안 보인다. 사촌형과 이모가 너 찾으러 갔다고 나가셨단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보니 이미 건너 아파트는 1층까지 잠겼다. 지상에 있던 자동차도 물에 잠겨 지붕만 보이는 상태다. 아직 집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스티로폼을 타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
그 당시 키가 커봐야 130cm 정도 되었을 테니 나는 벌써 물에 잠겨서 익사했을지 모른다. 오락실을 몰래 간 것은 둘째치고,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온갖 걱정을 했을 어머니께 너무 죄송했다. 얼마 뒤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직 나를 보지 못했나 보다.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와락 껴안는다. 그 다음은 엄청나게 혼났다. 어디에 갔다왔냐.. 잘못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느냐.. 등등 혼나면서 나도 엄청나게 울었다. 그래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안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밤새 몰아친 폭우는 다음날 아침에서야 그쳤다. 내 생애 그렇게 큰 홍수를 본 적은 없다. 인근 저지대 새 아파트의 피해는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1층에 살던 친구네 집은 물을 퍼내고 들어갔더니 온 가구가 못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근처 빌라에 살던 친구는 차를 바꿔야 한다고 아버지가 울상이라고 했다. 그나마 고지대에 있어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은 우리집은 신에게 감사했다.
그 홍수 이후로 안양천 주위로 둑이 높게 쌓였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길을 지나지만 비가 많이 와도 예전과 같은 큰 홍수는 없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가끔 어머니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며 한마디 하신다.
“근데 왜 오락실에 있던 거냐?”
#홍수나던날 #홍수 #죄송합니다어머니 #에세이 #황상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