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연말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만 6년차였지만 회사에 내 위로 상사가 없어서 팀장으로 한 팀을 이끌고 있었다. 2008~2009년에 걸쳐 터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우리나라 건설경기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아파트 미분양과 안 그래도 좁은 국토에 더 이상 개발할 수 있는 토지 등이 줄어들고 점점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지다 보니 신규로 발주되는 프로젝트 수도 덩달아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도 신규로 수주하는 일이 다른 회사에 빼앗기고 결국 기존 일보다 점점 적어졌다. 사장님을 포함한 경영진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회사 수요는 그대로인데 들어오는 일에 대한 공급이 작아지니 하나의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서 수많은 업체들이 입찰에 응해 수주할 수 있는 확률이 점점 떨어진 것이다. 결국 회사는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준 직원들을 자를 수 없다 보니 임금을 줄이는 감봉정책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장님이 직접 팀장급들을 불러서 당장 다음달부터 지금 받고 있는 월급의 50%만 지급한다고 주간회의때 선언해 버렸다. 팀원들에게 잘 말하라는 지시와 함께 회의는 끝났다. 다른 팀장과 함께 사장실을 나오면서
“00 팀장님! 직원들에게 어떻게 말하실 거에요?”
“모르겠어요! 저도 생각 좀 해봐야 할 거 같아요. 그렇지만 그래도 빨리 말은 해주어야 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네!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돈과 생활이 바로 결부되는 문제다 보니 빨리 말해야 직원들도 대처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한숨만 쉬면서 일단 각자 팀원들에게 말할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안 그래도 기존에 하고 있던 일과 퇴사한 사람들의 일까지 다 떠안게 된 우리 팀은 현재 인력으로 소화할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각자 일을 나누어 각개전투로 하루하루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팀장인 나와 팀원 2명이서 어떻게든 일에 대해 펑크는 내지 않기 위해 돈이 되고 일이 급한 순서대로 처리하고 있었다.
내 자리로 오면서 일하고 있는 팀원 A대리와 B사원에게 참 뭐라고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저녁에 술한잔 하자고 해서 조금 취기가 올라왔을 때 이야기하는게 좋을지, 아니면 지금 회의하자고 하면서 불러서 일 이야기 하는 척 하며 슬쩍 던질지... 일을 하면서도 계속 그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결국 고민만 하다가 그날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하도 답답해서 친한 친구와 약속을 잡고 퇴근 후 회사 근처에서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같은 엔지니어 로 첫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대학동기다. 첫 회사에서 몇 개월 월급이 밀리고 나서 나는 같이 있던 사수의 도움으로 다른 작은 회사로 바로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몇 개월 더 힘들게 버티면서 어려운 생계를 이어나갔지만, 부서 전체가 우리 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로 옮겨서 기사회생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지 5년이 지났다.
옮긴 회사 사무실이 역삼역 근처였고, 친구가 자취하던 동네가 또 근처라서 힘든 일이 있거나 일로 문제가 생기면 종종 만나서 상의하고 회포를 풀곤 했다. 그날도 그렇게 친구와 만나서 한 잔 하면서 물어본다.
“회사에서 새로운 일이 없어서 다음달부터 월급을 50%밖에 지원하지 못한다고 하더라! 참 일은 많고 힘들고, 그렇다고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그걸 반밖에 안 주면 우리같이 결혼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냐!”
“야! 나도 죽을맛이다. 큰 회사는 월급은 그래도 밀리진 않지만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아주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해야 하니.. 왜 이리 할 게 많은지 모르겠다. 사람은 없고.”
“어딜가나 힘들구나. 그래도 배운게 이것밖에 없는데 버텨야지. 어떻게 하겠냐? 그런데 돈을 반밖에 못받고 밀리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니. 당장 생활이 안 되는데 어쩌라고 하는건지.. 에이 술이나 먹자! 한 잔 받아라!”
“그래! 힘내라!”
그렇게 술잔을 서로 부딪히며 잊기 위해, 또 기분을 풀기 위해 마시고 또 마셨다.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것을 모르고 나는 또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도 그 문제로 팀원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그것보다 앞으로 내 미래는 또 어떻게 될지만 머리 속에 있었다. 친구랑 헤어지고 몸을 비틀거리며 귀가하면서도 내 마음은 계속 불안했다. 집에 오니 아내와 아이는 자고 있다. 술 냄새가 나니 거실에서 따로 누웠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하여 잠깐 회의를 하자고 W대리와 S사원을 불렀다.
“오늘 A대리는 어디 외근이지? B사원도 00지구 심의 자료 보완 좀 하고.”
일단 오늘 해야 할 일부터 체크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다음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으나,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시간되면 한잔 할까?"
라는 질문에 흔쾌히 팀원들은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다시 미뤄지고, 각자 할 일을 하고 일과를 마치고, 근처 고깃집에서 모였다.
“그동안 우리끼리 한잔 못했는데. 오늘 회식 겸 해서 한번 먹자!”
“좋죠!”
한명은 고기를 굽고, 한명은 자리 세팅을 한다. 나는 비어있는 팀원들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서로 잔을 건배하고, 원샷으로 들이킨다. 한 두어번의 술잔이 들어가자 나는 결국 팀원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다음달부터 월급의 50%밖에 지급이 안된다고 사장님이 그러시네. 지금 수주되는 일도 없고, 회사에 잔고도 없어서 그렇게 해야겠대. 어떻게 생각하냐?”
신나게 놀던 팀원들이 나를 쳐다본다.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지더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50%라뇨. 사장님이 직접 빚을 내서라도 직원들 월급은 챙겨주어야지..”
“자기도 반년동안 대출 받아서 우리 월급준거라고 하던데. 나나 옆에 팀장보고는 조그만 일이라도 하나 수주하라고 난리다..”
“아니 팀장님도 지금 어떻게 수주를 하라고 하시는 건지. 사장님은 맨날 앉아만 있고 본인은 영업할 생각도 없는데.. 지금까지 직원들이 열심히 해서 사장님 배만 불러주게 한건 아닌지 모르겠어요..50%만 지급하면 일하는 날도 한달에 딱 반 나오는게 정상아닌가요?”
“그러네. 50%만 지급하면 반만 나오는 게 맞네. 에이 술이나 먹자. 한번 그 이야기는 내가 말씀드려 볼게.”
그렇게 팀원들과 또 술을 마신다. 마시다 보니 또 취한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사장님의 말도 안되는 급여 50% 지급등이 정말 나를 힘들게 했다.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이번 회사가 나는 4번째 회사였다. 이 회사를 나가게 되면 정말 갈 곳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버티어내야 할 상황이었다. 하루하루가 참 피가 마르고 힘든 상황이고, 그 당시에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