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010년 연말에 급여 50%를 주겠다고 하고 사장님이 공표하는 바람에 직원들의 사기는 날이 갈수록 떨어져갔다. 해야할 일은 많은데 출근하기도 싫고, 사무실에 가더라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무기력했다. 열심히 일을 해봐야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이 직원들 사이에서 너무 팽배했다. 옆에 팀장도 결국 자기 팀원들에게 이야기를 전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나서 2011년 새해가 되었다. 새해가 되어도 희망이 없으니 그냥 하루하루 연명하는 뿐이었다. 또다시 다른 회사를 알아보려고 몰래 구직사이트에서 다른 직장을 찾아보면서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왜 옮기는 회사마다 이럴까?라고 신세한탄만 나온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설계회사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새로운 일이 조금씩이라도 들어오면 2-3년간 그래도 월급은 안 밀리고 버틸 수 있는데, 그마저 일이 없어지면 돈이 없어서 회사 운영도 위태로울 지경이다.
일이 힘들어도 무슨 보상이 있거나 그게 없더라도 월급이라도 따박따박 나온다면 불평없이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일해도 보람이 없으니 팀원들에게도 뭐라 하기도 애매했다. 일단 나부터 일하기가 싫으니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공무원이나 클라이언트가 전화와서 일처리를 빨리 해달라하면 하긴 하는데, 정말 대충 정리해서 욕만 안 먹을 정도로만 일을 했다. 받는 만큼만 일하자는 생각에 사장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마음이 여린 탓에 또 그렇게 따지지는 못했다.
같이 있던 옆에 부서팀장이 사장님에게 같이 좀 따지자고 했다. 나도 동참하여 그러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 괜히 개겼다가 오히려 나가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우유부단하는 모습을 본 그 팀장은 나에게 빨리 같이 힘을 모아서 전부 출근을 하지 말던가, 사표를 내서 사장한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큰 회사처럼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끼리라도 뭉쳐서 단합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것을 들으면서 나는 고민이 되었다. 큰회사 노조처럼 직원들끼리 뭉쳐서 사장님께 따지는 게 맞는데, 또 한편으론 이런 작은 회사에서 괜히 잘못 찍혀서 해고라도 당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두 개의 생각이 계속 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일단 나는 그 팀장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그때 회사에 다른 항만회사에서 추진하는 신항만 개발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하자는 제의가 들어와 사장님께서 검토중이셨다. 신규일이 없던 터라 당연히 사장님은 이 일은 해야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경우 일을 하게 되면 그 항만회사 사무실에 가서 근무를 해야하는 조건이 있었다. 세 개 회사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메인을 담당하는 회사에서 합사 사무실을 꾸려 파견을 나가는 형식이다. 프로젝트는 총 10개월 정도 소요되고 끝날때까지 그 회사에서 근무해야 했다. 사장님은 우리팀과 옆팀 중 하나는 여기에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옆팀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갈 것인지.. 사실 그 팀장은 회사에 오래 있어서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그 팀장이 안나갈거란 걸 알고, 내가 먼저 나가겠다고 했다.
사장님께 가서 내가 파견을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차라리 나도 새로운 환경에 가서 일을 하면 지금보단 나을 거 같기도 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우리팀이 다 나가는 건 아니고 나와 W대리만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2월 초에 우리는 짐을 가지고 항만회사 합사 사무실로 파견을 나갔다. 합사에 오니 새로운 회사에 이직한 기분이었다. 다 모르는 사람이고, 새로운 환경이다 보니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도 새로 지어 깨끗했고, 같이 일하게 된 다른 합사 직원분들도 친절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월급날이 되었다. 월급이 또 50%만 들어왔다. 고정비로 나가는 생활비도 많은데 결혼할 때 만들었던 마이너스 통장 액수만 또 늘어났다. 본사에 남았던 다른 팀장은 결국 그 불만으로 퇴사 결정을 내렸다. 그 전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왜 같이 항의를 안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이미 나는 이 회사로 오기전에도 이미 3번이나 이직을 했기 때문에 또 그만두는 게 두려웠다.
그렇게 회사 인원이 또 반으로 줄었다. 사장님은 다시 월급을 제대로 주겠다고 연락왔다. 그런데 그만두었던 다른 팀장이 나가기 전에 사장님께 합사로 파견나갔던 나와 W대리는 한 단계 진급을 시켜 제대로 챙겨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오히려 합사를 나가서 월급이 오르게 되어 같이 항의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자기를 희생하고 그런 선택을 했던 그 팀장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이제야 전하고 싶다.
그렇게 신항만 프로젝트를 10개월간 진행하면서 나는 본사와 합사 사무실을 오가면서 일을 진행했다. 그만둔 다른 팀장의 자리를 후임이 다행히 들어오게 되어 그 친구가 본사에 있던 일을 책임지기로 했다. 나는 합사 프로젝트를 잘 끝내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그리고 내 윗 직급이 바로 사장님이었기 때문에 나는 회사직원 관리와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매달려야 했다. 약 7~8개월은 순조롭게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합사가 차려진 신항만 프로젝트 기간은 원래 10개월로 딱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원래 우리 일이 정확한 기간에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지자체와 발주처등의 사정으로 원래 해야 할 공정기간에 그것을 못하고 미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도 실제로는 반년 정도를 더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3개 회사가 계약한 비율대로 비용을 투입하여 10개월만 합사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 정산하여 나눈 비용이 실제 계획한 비용과 틀리다 보니 각 회사마다 업무에 투입된 경비문제로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회사 사장님도 매달 정산하는 비용을 보고 회사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서 당장 본사로 복귀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나는 눈치없이 이 프로젝트를 끝내야 할 때까지는 복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점이 사장님의 눈밖에 나는 첫 계기가 되었다.
계속 사장님은 비용이 투입되는 그것이라도 아껴야 하니까 당장 사무실로 복귀하라고 하신건데, 나는 그 점을 간과했다. 이 신항만 프로젝트 중에 내가 맡은 부분이라도 책임지고 끝내야 한다는 그 책임만 생각했다. 사실 사장님이 내 월급을 주는 사람이라 합사일은 본사에 들어가서 신경을 쓰면 그만인데, 오히려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 본사에 있던 직원들이 빨리 본사로 복귀하시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도 늦게나마 눈치를 채서 합사에 있던 다른 회사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본사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좋지 않았다.
본사로 복귀하고 나서 사장님은 나를 불러서 야단만 치셨다. 특히 합사에서 쓴 경비를 제대로 정산하여 받아야 하니 잘못되면 니가 책임을 져야한다고만 하셨다. 결국 나는 경비 정산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다행히 합사 사무실로 다시 가서 머리를 맞대고 경비 정산을 다시 하여 보고를 드렸더니 그 문제는 잘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사장님께 한번 찍힌 나로서는 그 믿음을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본사에 복귀 후 무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쉽게 하던 일도 이상하게 꼬여서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진행하다가 수주하려던 개발사업의 비용을 잘못 계산하게 되었다. 그 잘못된 검토서를 가지고 사장님을 모시고 발주처에 갔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에게 잔뜩 화가 나신 사장님은 딱 한마디만 하셨다. 이제 넌 해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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