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통보를 받고 사장실에서 나오는 순간 정말 머리가 하얘진다는 느낌을 처음 알았다. 살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날 충격은 내 인생에 TOP3에 들 정도였다. 사장님은 자기 방에서 아직도 분이 안 풀리셨는지 긴 한숨만 내쉬면서 하루종일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단지 회사가 어렵고 자기 돈을 계속 투입해서 회사 운영을 계속 해야할지 말지 여부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내 미래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박봉이지만 지금 회사에서 직급이 제일 높고 그래도 월급을 제일 많이 받는 나를 잘라야 그나마 회사 운영에 유지가 될 것이라고 미리 판단했을 것이다.
사장실에서 내 자리로 돌아오는 그 시간이 5분 정도 거리가 1시간은 길게 느껴졌다. 이제 회사를 나갈 시간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무슨 준비도 없이 갑자기 나가게 되자 막막했다. 내가 직장이 싫어 사표를 던지고 나가는 상황이 아니다. 계획된 이직이 아니다 보니 당장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도 나질 않았다. 모든 상황이 깜깜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에도 집중이 되지 않아 팀원들에게 이야기하고 잠깐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사무실 옆 커피숍에 잠깐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제 곧 봄이 되는 시점이고 그날따라 유난히 날씨가 맑았다. 하늘을 보면서 눈을 감으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남자치고 눈물이 많은 편이다 보니 또 한 두방울 떨어진다. 그냥 서러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단추를 끼고 달려온 것인지…… 작년에 합사를 나가게 된 것이 기회가 아니라 위기를 자초한 꼴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합사에 나갔을 때 껄끄러웠던 다른 팀장도 나갔고, 내가 이제 사장님 바로 아래 직급이 되다 보니 젊은 나이에 잘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너무 자만하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생각도 든다. 여러 생각이 교차했지만 그래도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니 적막감만 흐른다. 사장님이 소리치면서 나에게 이야기했으니 그 이야기가 다 들리는 직원들이 내가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내 스스로가 감당이 안되니 직원들도 내 눈치만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줍잖은 위로 한마디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그렇게 퇴근할때까지 멍하게 앉아만 있었다. 직원들은 그제야 야근해야 하는데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물어본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아직 결정도 못했던 터라 직원들과 같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A대리가 소주 한잔을 따라준다. 나는 말없이 잔만 받는다. 식당에 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한 두마디 일 이야기만 하고 말이 끊긴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애써 웃으며 밥이나 먹자고 하며 술잔을 따라주며 돌린다.
“나는 괜찮아. 다들 각자 잘하니까 파이팅하자. 내가 잘못해서 일이 이렇게 된거라……”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사장님도 참 갑자기 왜 그러신 건지……”
“갑자기 그런건 아니실 거야. 니들도 잘 알지 않냐? 그동안 내가 저지른 업무실수나 근태등도 넘어가다가 이번 일이 빌미가 돼서 그렇게 되었을 뿐……”
애써 그렇게 직원들에게 설명을 했지만 마음은 많이 아팠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2008년 전 직장에서 대리를 달았지만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근무, 상사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반년만에 그만두고 규모가 작지만 내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지금 회사로 오게 되었다. 오자마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바쁘게 지내면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도 하고, 4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일을 하면서 야근, 철야근무로 인한 만성피로와 발주처 및 공무원에게 시달리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매번 술을 마셨다.
사실 직장인에게 있어서 술이 스트레스를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술을 기분좋게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면 괜찮은데, 나는 꼭 그 이상으로 마시다 보니 가끔 다음날 일에 지장을 준 적이 있다. 이 회사를 와서 1년에 1~2회 정도는 폭음하고 다음날 지각하거나 무단결근 한적이 있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근태가 중요한데 이 부분도 사장님께서 계속 지켜보셨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인 근태도 태만했으니 당연히 눈 밖에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래도 한 두차례 실수는 하지만 업무를 풀어가거나 문제 해결 능력에서 탁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곧잘 수행했기에 어찌어찌하여 연명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장님도 우리 업계에서 30년을 넘게 근무하셨으니 내가 어떻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본인도 신입사원부터 시작하여 사장까지 오르신 분이니 직원, 임원의 생리는 다 인지하면서 모른척 했을 뿐이다. 회사사정도 안 좋다 보니 예민하신 상태에 결정적으로 업무에 실수하여 수주를 못했으니 당연히 책임을 지고 나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직원들과 식사하면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집에 오면서도 냉철하게 판단해보니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아마 이번 검토일이 잘 마무리되어 수주가 되었으면 나머지 실수는 덮어졌을 것이다. 이미 결론은 났다. 이 회사에서는 더 이상 다니지 못하고 나가는 것으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아직 가슴으로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웃으면서 회사에서 나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괜찮아……”
위로해주는 아내에게 참 미안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혼자서 많이 울기도 했다는 아내의 말에 너무나 괴로웠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아내가 점심에 먹으라고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 시기에는 정말 입맛도 없어서 식사때마다 밥을 거의 남기곤 했다. 점심시간에 다른 직원들은 식사하러 밖으로 나가고, 나 혼자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뚜겅을 열고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숟가락 아래로 자꾸 뭔가가 흘렀다. 도시락 안으로 자꾸 흘러내렸다. 밥 한 숟가락에 눈에서 한방울씩 눈물이 떨어졌다. 먹을때마다 자꾸 눈물이 많아진다. 남자가 되어 왜 이리 눈물이 많은지……
밥을 반쯤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펑펑 울었다. 왜 이렇게 된건지.. 내 자신이 너무 못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후 그만두고 나서 방황하던 시기에도 밥을 먹었지만 이날 먹은 점심은 내 인생의 가장 슬픈 밥상이었다. 앞으로 다시 이런 밥상은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제 나갈 날이 3일 정도 남았다. 그래도 일자리는 알아봐야 할 거 같아서 다시 사람인과 같은 구직 사이트에 공고문을 찾았다. 일단 그 당시 3살이던 첫째아이와 아내를 먹여 살려야 하기에 서울과 지방에 관계없이 일자리를 구했다. 청주에 00기술단에 이력서를 넣었더니 바로 면접을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나도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보니 바로 다음날 내려가겠다고 했다. 이미 해고되었으니 일도 더 이상 하기가 싫었고, 하고 있던 프로젝트는 부사수에게 하나씩 인수인계를 하던 상황이다.
다음날 청주 00기술단 면접은 생각보다 괜찮았으나, 여러 제반 여건상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가 불렀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계시겠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없이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내 인생을 어디로 가는지 모른 체 벼랑 끝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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