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by 황상열

퇴사하다.


시간이 흘러 회사를 나가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침 출근길을 나서는데 이 길로 다니는 날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출근하고 나서 내가 쓰던 자리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4년이 좀 안되는 시간동안 그래도 검토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많았는지 정리하고 버릴 서류들이 꽤 많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말 없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정리했다. 하루종일 직원들과도 몇 마디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같이 밥을 먹을때도 일상적인 이야기만 했다. 앞으로 나의 미래에 대해 묻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아직도 감정이 풀리지 않은 사장님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도퇴근하기 전 사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퇴근 후 마지막 날 밤 직원들과 회사 앞 술집에서 조촐하게 송별회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마지막이니 직원들과 작별인사는 하고, 술 한잔이 들어가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회사에 있으면서 그렇게 밉상은 아니었나 보다. 단 한명의 직원도 빠지지 않고 다 참석해서 같이 위로해줘서 참 고마웠다. 지금은 다들 흩어져서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그 친구들을 같이 응원한다.

짐을 들고 나올때는 참 무덤덤했다. 내가 잘못했던 일이었기에 당연히 책임을 지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과 술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아무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술집에 앉아서 한 두잔 기울이면서 같은 팀원이었던 A대리와 B사원이 먼저 말을 꺼낸다.


“팀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이렇게 나가게 되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을 나가라고 하는 게 맞는건지……”

“모두 생각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나가게 된건 내 업무 실수가 결정적인 게 맞지. 그 부담금을 안내도 되는데 법적검토를 잘못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건 맞으니까.”


한 두마디씩 하다가 그동안 고생했다고 이야기를 하며 직원들과 이별주를 먹었다. 직원들은 또다른 기회가 있을테니 너무 상심해하지 말라고 위로를 했다. 잠깐 머리를 식히러 술집 화장실로 이동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끝까지 해결하기 위해 야근과 특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세면대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너무나 답답하고, 내 자신이 너무 못난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힘든 시련이 있을까 할 정도로 마음도 아프고, 온 몸이 떨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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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술집 화장실에서 한번 크게 울고 나서 아무렇지 않은 듯이 헤어졌다. 머리는 계속 멍하고 마음은 답답한 채로 짐을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아무런 힘없이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그 당시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혼자서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집에 거의 도착할때쯤 또 한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회사 매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내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일을 한다고 했지만 정작 결과는 이제 실업자가 됐구나 라는 허탈한 마음에 울컥한 것이다. 정말 너무 억울했다. 도대체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자꾸 깨지고 넘어지며 실패자로 느껴지는지 하늘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집 앞 전봇대 앞에서 설 기운도 없이 기대서 혼자 서럽게 한참을 펑펑 울었던 거 같다. 혼자만 이렇게 아프고, 왜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지..


집 앞 전봇대에서 한참을 울고 넋이 나간 채 멍하게 한 시간을 서 있었다. 벌써 새벽 1시가 넘었다. 아내와 첫째아이는 아마 자고 있을 것 같다. 나같은 못난 남편을 만나 마음고생만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결혼하고 나서 없는 살림에 아이 키우랴 내 뒷바라지 하랴 고생만 했다. 정신을 차려 그 당시 살던 단독주택 대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갔다. 불이 꺼진 거실과 방은 조용했다. 옷을 갈아입고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했지만, 한순간이었다. 화장실에서 씻으면서 거울을 쳐다보니 퀭한 모습의 다른 누군가가 서 있는 듯 했다. 열심히 살았는데 현실은 이렇게 가혹하다니…… 계속 억울한 마음에 눈물만 나왔다. 씻고 나와 자고 있는 가족들 옆에 누웠는데도 새벽 늦게까지 답답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새벽 4시가 돼서야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

일어났는데 벌써 아침 11시다. 아내는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지인을 만나러 갔는지 집에 아무도 없었다. 정말 이제 다시 백수가 되었다. 이제 서울 어디 사무실에도 내 자리는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아직도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고 괴로웠다. 배도 고프고 했지만 입맛이 없어서 뭘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시 펴 놓은 이불 안에 누웠다. 머리가 계속 멍하고 무기력증에 걸린 둣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다 귀찮았다. 그렇게 또 잠이 들어 몇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나를 깨웠다.


“밥 안 먹었으면 일어나서 챙겨줄테니 먹어.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하나님이 주신 기회일 수도 있어.”


신앙심이 깊고 교회를 다녔던 아내가 해주는 말에 조금은 힘이 났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늘 걱정이 많았던 나는 아내의 말에 버럭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다.


“당장 이번달 월급이 안 들어오니 생활비도 없어. 그리고 이제 나이가 35살이라 받아줄 다른 회사도 없구.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현실이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지!! 당신은 내가 얼마나 힘든 줄 몰라!”


아내가 차려준 밥상도 몇스푼 떠먹지도 않은 채 답답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멀리 간다고 나갔지만 오후에 갈 곳이 없었다. 27살 대학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때까지 중간에 2개월 정도 쉰거 빼고 매일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렇다 보니 쉬는 날이 생기면 자느라 바빴고, 가족들과 제대로 시간을 보낸적이 없었다. 갑자기 많이 생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얼굴은 잔뜩 인상을 쓴 채로 걸어다니는 사람들만 구경했다. 저 사람들은 대체 뭘 하는 사람들인데 저렇게 바쁘게 걸어갈까?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그렇게 두어시간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부엌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다. 또 그것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방법을 찾아보고 했어야 했다.


갑자기 나오게 되면서 미래준비를 못하다 보니 그게 더 불안했다. 아내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실업급여라도 몇 개월 받으면서 다른 회사 자리를 알아보라는 조언에 크게 동의하고 공감했다. 다시 혼자가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많이 된다. 요새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좋은 교훈이 있었지만, 그때는 마음 한켠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했다.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처럼 나는 점점 그 수렁으로 빠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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