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그녀들

(feat. 캠핑클럽 with 핑클)

by 황상열


<나를 채워가는 시간들>과 블로그에도 몇 번 언급했던 것처럼 나도 한때 아이돌을 좋아하는 빠돌이였다. 그 아이돌 그룹은 바로 90년대 후반 ses와 여성그룹의 선두주자였던 핑클이다.


1998년 5월 대학교 2학년 후배들과 술을 마시다가 처음 듣던 노래가 그들의 데뷔곡인 <블루레인>이었다. 여느 아이돌 그룹과 다르게 느린 템포의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방송을 보니 각기 다른 4명의 멤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털털하지만 여성적이고 화려했던 리더 이효리, 노래는 거의 천하무적이었던 옥주현, 그 시절도 인형같이 예뻤던 성유리, 청순하지만 새침떼기 같던 이진. 그들은 4년 정도 짧은 그룹활동을 마치고 해체는 하지 않은 체 각자 개별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효리는 솔로 데뷔 후 오히려 그룹시절 보다 더 큰 인기를 구가하면서 가요계의 정점에 섰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전성기를 이어갔다. 보컬로써의 재능을 인정받고 온갖 어려움을 딛고 뮤지컬계를 장악한 옥주현도 대단했다. 성유리와 이진은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고, 나름대로 입지를 굳힌 상태였다. 무한도전에서 토토가라는 컨셉으로 90년대 가수들을 소환했던 적이 있다. ses와 젝키, HOT까지 다 출동했지만 아쉽게도 그 자리에 핑클은 없었다.


나와 같은 핑클팬들은 딱 한번만이라도 완전체가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멤버들간의 불화 루머 등이 많아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그랬던 그들이 모두 모여 한 예능프로그램으로 18년만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랜 팬으로 기사만 봐도 뭉클했다. 몇 달 뒤 방송된 프로그램은 멤버들이 6박 7일의 캠핑을 떠나는 컨셉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멤버들은 서먹서먹했지만 곧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캠핑을 시작했다.

캠핑이 진행될수록 서로간에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간 풀지 못했던 오해와 앙금을 털어냈다. 지나간 세월만큼 연륜이 쌓이다 보니 어릴때는 잘 풀리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효리는 리더로써 동생들을 잘 챙기지 못했던 아쉬움과 혼자만 너무 잘나가는 과거를 돌아보며 미안함을 전했다. 뮤지컬 디바로도 잘 나갔던 옥주현 조차도 천하무적 솔로가수 이효리를 질투했다고 하니 다른 멤버들의 마음은 더 착잡했을 지도 모른다.


“언니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 빼고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질투도 나고 방황도 많이 했다. 나만 제일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핑클의 추억을 보지 않았다고.”


마지막날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는 성유리의 고백에 다들 숙연해진다. 같은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누구는 잘 나가고 나 혼자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30대까지 잘 나가는 친구들을 질투하고 비교하면서 혼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을 뿐 나 혼자 피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아마도 핑클 멤버들도 해체만 하지 않았지 각자가 지치고 서로 불편함이 싫어서 떠났는지 모른다.


그렇게 돌고 돌아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이 되어 만난 그녀들은 이제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세윌이 흘러 천상 연예인으로 태어나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그 반대급부에 지쳐서 이제는 다 내려놓고 자연인의 삶을 즐기는 이효리, 노래만 잘하고 외모는 최악이라는 오명을 쓰고 부단한 자기관리로 미모와 뮤지컬계를 사로잡은 옥주현, 외모는 정말 최고지만 스스로 끼가 없다고 자평하지만 꾸밈없고 진솔한 연기자로 자리잡은 성유리, 이번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예능감을 뽐내고 자기 역할은 확실히 잘 하는 연기자 이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핑클로써 보여준 예술은 짧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 그녀들의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어릴 때 방황을 많이 하다보니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인생은 계속 돌고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보다 일찍 더 잘나갔던 친구가 계속 승승장구 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 별볼일 없다고 여긴 친구가 지금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이제 그녀들의 무대만 남았다. 40대 전후가 된 그녀들에게 예전처럼 화려하고 멋진 무대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좀 틀리고 엉성하더라도 4명의 멤버가 노래를 하며 춤을 추는 완전체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그녀들의 캠핑과 일상모습을 보며 힐링했다. 나는 앞으로도 그녀들을 응원하는 영원한 빠돌이다.


#핑클 #캠핑클럽 #다시만난그녀들 #이효리 #옥주현 #성유리 #이진 #인생 #글마시는남자 #나는매일쓰는사람입니다 #단상 #황상열

20180510104156_1211721_600_425.jpg
블로그-시그니처.png


이전 08화걷기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