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워가는 시간들
올해 마지막 금요일이다. 하루 연차를 내고 아침부터 둘째아이 치아를 뽑으러 가기 위해 치과에 들르는 등 오랜만에 좀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사실 아침 일찍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려고 했다. 치과 공포증이 있는 6살 아들은 가기 싫다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같이 실랑이 하다가 결국 아내의 중재로 겨우 따라나섰다. 치과에 가서도 무섭다고 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오전에 진이 다 빠졌다. 매일 아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아내가 존경스러웠다. 아니 육아를 하느라 매일 전장에 나가는 엄마들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어린이 전용 치과에 갔는데, 치아 치료도 힘든데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며 치료하는 원장님도 존경스러웠다. 무섭다고 소리치는 아이를 웃으면서 감정을 가라앉히고 속전속결로 흔들리는 치아를 뽑는 실력에 감탄했다. 치아가 빠져서 시원한지 아이도 그만 눈물을 그친다.
집에 돌아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부모님과 여동생 내외를 만나기 위해 차를 돌렸다. 오늘이 매제 생일이기도 했고, 송년회를 겸하여 두 달만에 가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이다 보니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리를 길이 막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오랜만에 2시간을 넘게 운전하면서 같이탄 가족을 바라본다. 막내는 타자마자 자기 시작했다. 조수석에 탄 둘째아이도 10분 정도 혼자 떠들다가 어느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뒷자리에서 아내와 이야기하던 첫째아이도 1시간이 지나가 자고 있다. 연신 피곤하다는 아내는 지인과 긴 시간 통화하다가 끊고 난 후 무료한 나의 대화상대가 되어 주었다.
본가에 갈 때 항상 막히는 마의 구간이 영등포역 로터리다. 차의 평균속도는 거의 10km/h 다. 가다 서다 반복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다. 잠깐 차가 멈추어 섰을 때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몇몇은 무표정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내 볼을 타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잠깐 기분이 상쾌함을 느낀다.
오랜만에 본 부모님, 여동생 내외와 저녁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외식보다 집안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편했다. 여동생 내외가 사는 집이 장난감도 많다보니 우리 아이들도 좋아한다. 내 조카는 한명이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오면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연말의 마지막 금요일을 즐겼다.
족발과 해물찜을 안주삼아 한 두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가을에 회사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여동생도 이제 좀 괜찮아졌는지 마음이 편해 보인다. 프리랜서로 새출발한 매제도 계속 바쁘다가 오랜만에 한가해져서 좋다고 웃는다. 내년이면 70이 되는 아버지는 여전히 42년째 직장생활 중이시다. 연봉이 조금 올랐다고 좋아하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존경스러웠다. 건강하게 생활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다행이라고 느꼈다. 12월 한달동안 좋아하는 지인, 친구들과 각기 다른 송년회를 즐겼다. 하루하루 그들과 술잔 부딪히며 서로의 안부와 새해의 축복을 같이 빌었다. 웃고 떠드는 그 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2019년 마지막 주말 아침에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나의 작은 일상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아이와 같이 씨름하며 짜증내는 순간, 좋아하는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떠드는 순간, 차 한잔 마시며 평온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 등 올 한해도 나를 채워갔던 그 시간들 하나하나가 행복했다. 내년에도 그런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나와 지금 마주치는 사물, 감정,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하여 행복을 느껴보려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런 시간을 많이 만나기를 소망한다.
“인생을 살다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순간에 집중하여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 오늘부터라도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아보고 그것을 마음껏 누려보자.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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