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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Last Christmas)

by 황상열


2019년 크리스마스도 이제 몇 시간이면 끝난다. 나이가 들어가니 성탄절도 그냥 365일 중에 똑같은 하루로 느껴진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12월말이 되면 그 특유의 겨울 분위기를 참 좋아했다. 거리마다 울려퍼졌던 캐롤도 더 이상 울리지 않으니 아무런 감흥이 나지 않는다. 오늘도 성탄 예배와 장인어른과 특별한 식사를 제외하고 독서와 글쓰기로 조용히 일상을 보냈다.


이 글을 통해 처음으로 밝히는 특별한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있다. 7년전 해고를 당한 후 나락으로 떨어졌던 인생을 다시 살고 싶어 생존독서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났다.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알았고, 새로 옮긴 회사에서도 잘 적응하던 시점이다. 그 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퇴근 후 4살된 첫째아이의 선물도 살 겸 교보문고 잠실점에 들렀다. (다니던 회사가 방이동에 위치하여 잠실역으로 출퇴근했다)


일단 첫째아이 선물을 사러 교보문고 안에 있는 완구점을 방문했다. 인형을 좋아했던 딸을 위해 캐릭터 인형을 하나 골랐다. 선물을 주면 좋아할 그녀를 상상하며 책을 사기 위해 다시 책 코너로 이동했다. 늘 가는 자기계발 코너로 갔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많았다. 이브날 저녁이다 보니 데이트 하는 커플도 많았다. 어떤 책을 볼까 한참을 두리번 거리는데, 내 눈앞에 안절부절 못하는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계속 그가 눈에 밣힌다. 안되겠다 싶어 그 앞에 가서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나요?”

“네? 왜 그러세요?”


갑자기 낯선 사람이 말을 걸자 놀란 듯 했다.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누구나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아니 계속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아서요. 괜한 오지랖은 아니지만 한번 궁금해서 말 걸어봤네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가던 길 가세요.”


더 말을 걸면 실례가 될 거 같아 다시 읽고 싶은 책을 매대에서 찾기 시작했다. 5분간의 스캔 끝에 보고 싶은 신간을 찾았다. 책을 들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러 가는 중에 아까 대화했던 학생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이번에는 내가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신가요?”

“저 아깐 죄송했습니다. 지금 아저씨가 들고 있는 그 책을 사실 꼭 사서 읽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그냥 사면 되지. 돈이라도 빌려줄까요? 나중에 이체해주면 되는데.”

“....... 그럼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돈이 생기는 대로 꼭 갚겠습니다. 좀 오래 걸릴 거 같지만요.”


갑자기 학생의 눈이 그렁그렁하다.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인데 대답하는 목소리도 기어 들어간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이 책 가져가요. 나는 내가 또 구입하면 되요.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네? 진짜요? 제가 받아도 되요?”

“네..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못 봤어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가져가서 잘 읽어요.”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혹시 밥 안 먹었으면 같이 식사할래요?”


몇 번이고 사양하는 그 학생을 데리고 근처 패스트푸드 점에 가서 햄버거 세트를 같이 먹었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고등학생인데, 부모님은 이혼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과 재혼하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지방에 계시니 잘 만나지 못한다고 담담히 말한다. 몇 달 전 아르바이트 자리도 잘리는 바람에 나라에서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히 먹고 살아간다고 했다. 지금 나온 이 신간을 너무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도서관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서점에 오랜만에 나왔다는 그의 이야기에 울컥했다.


연신 책 선물에 감사하다는 그의 인사에 오히려 많이 미안했다. 저렇게 보고 싶은 책을 눈앞에 두고도 사지 못하는 아니 살 수 없는 그 현실이 얼마나 비통하고 애석했을지. 지난 크리스마스에 그래도 참으로 내 생애 뜻깊은 선물을 한 거 같아 기분은 최고였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그 친구도 지금은 취업준비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00아,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기에 나의 작은 선물 하나에도 고맙다는 너를 보면 어디에 가도 성공할 거라 믿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항상 네가 먼저고 너의 행복과 건강을 먼저 챙겼으면 해. 앞으로 좋은 일만 있고 꽃길만 걷길.”


지난 크리스마스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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