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꽝! 아아악....!”
앞에 무엇인가를 박은 듯 하다. 눈을 떠 보니 나무다. 일단 이마에 멍이 든 것을 빼면 내 상태도 괜찮아 보인다. 일단 문을 열고 내렸다. 차 앞을 보니 번호판과 범퍼 일부가 찌그러졌다. 큰일이다. 반납해야 하는데, 망가졌다. 군대에서 휴가나왔던 어느 날 친구 아버지의 차를 빌려 집에 돌아오는 중에 사고가 났다. 친구를 내려주고 다음날까지 쓰고 돌려주기로 했는데,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미안하다. 사고가 좀 나서 차가 좀 망가졌어....”
겁이 나고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에게 전화했다. 친구는 일단 다친 곳은 없냐고 물어보면서 망가진 차 때문에 아버지에게 혼날 것 같다고 울먹였다. 내가 직접 잘못했다고 하면서 수리비도 책임지겠다고 했다. 다음 날 친구 아버지를 뵈러 가는 발걸음은 정말 무겁고 무서웠다.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가는데다 군인 신분으로 사고를 쳤으니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른다. 친구의 안내로 그를 만났다. 진심으로 잘못을 빌 생각에 신발을 벗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친구 아버지가 일어나라고 한다. 다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고개도 펴라는 말씀에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으로 아버님의 차가 망가졌으니 다 책임지겠습니다.”
“어떻게 책임질건데, 내 차 비싼 거라 수리비도 꽤 나올건데 말야.”
“지금 당장 돈이 없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갚겠습니다.”
“그 대답이면 됐다. 군인이 어떻게 지금 일을 하냐? 앞으로 조심하고 다녀.”
그 말씀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흐른다. 너무 긴장한 탓에 힘이 풀렸나 보다.
“사내 자식이 울기는.. 차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00이와 나가서 놀아. 휴가나왔는데 즐겁게 놀아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친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친구에게도 다시 한번 사과했다. 멋진 아버지를 둔 덕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후유증이 생겼다. 다시 운전을 하기가 겁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날 이후로 근 9년간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22살에 이 사고가 일어났다. 31살에 첫 차를 살 때까지 자리에만 앉으면 이 날의 악몽이 생각나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다시 운전을 하기 위해 일주일 간 도로연수를 받아야만 했다.
다시 운전을 하게 된 계기도 회사 업무로 혼자 지방에 가야 할 일이 많아져서 어쩔 수 없었다. 도로연수를 받는 첫 날도 너무 긴장해서 강사에게 엄청 욕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연수를 받고 나서 처음으로 차를 샀다. 그 당시 아내를 소개받아 차로 데이트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운전하면서 어디든 갈 수 있다. 어떤 사고가 나면 트라우마가 남는다. 나에게 운전 트라우마가 있었던 20대.. 아마도 뚜벅이로 살다보니 연애도 많이 실패했었나 보다. 이번 주말은 어디로 드라이브 가볼까? 우선 가족을 태우고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운전하는 것이 처음이 될 듯 하다. 혹시 여러분은 어떤 트라우마가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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