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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an 26. 2020

어느 할머니의 눈물


오전 교회예배가 끝나고 오랜만에 집으로 걸어갔다. 명절동안 먹기만 하고 움직이질 않았다. 칼로리 소비도 하고 동네 구경도 할 겸 걷게 되었다. 교회에서 집까지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날씨가 좀 쌀쌀하긴 했지만 걷기에 좋은 맑은 날씨다. 바람을 맞으며 사람이 없는 한산한 거리를 걸어보니 상쾌하다.     

 

10분 정도면 집에 도착할 거리까지 오게 되었다. 집을 도착하려면 인근 홈플러스를 지나야 한다. 아직 매장 개장 전이라 조용했다. 홈플러스 정문 앞에 혼자 구부정하게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여러 박스와 종이를 주워서 가지고 온 작은 접이식 구르마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잠깐 힘이 들었는지 벤치에 앉아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발을 동동 구른다. 다시 일어나서 구르마를 끌고 가는데, 박스와 폐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에고! 이걸 어쩐다냐!!”      


떨어진 폐지를 다시 줍기 위해 할머니는 안 그래도 힘든 몸을 다시 굽힌다. 보다못한 나도 같이 폐지를 주우러 갔다. 같이 주워 다시 구르마에 놓으니 금방 끝났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 모습에 좀 당황했지만, 어디까지 가시냐고 물어보고 구르마를 대신 끌려고 했다.      


“이 근처에 사는데, 괜찮다고. 그냥 운동삼아 나온 나온겨. 가족은 없어.”

“... 가족이 없으세요?”

“아들이 지방에 있는데, 일이 바빠 본지 오래됐어.”

“그래도 명절인데 안 오세요?” 

“그러게. 한 번은 좀 오면 좋은데..”     


그 대답을 하면서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힌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젊은이. 고마워. 어여 가던 길 가봐.”

“네.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장갑 끼고 다니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할머니를 뒤로 하고 집 방향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다 잠깐 뒤를 쳐다보니 힘들게 구르마를 끌고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참 쓸쓸해 보였다. 할머니도 이 설날에 가족이 참 보고 싶을텐데, 오랫동안 아들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역력했다. 두 사람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자식이라면 명절에 부모님께 세배하러 인사 정도는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할머니의 눈물이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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