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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Feb 08. 2020

아빠라는 이름으로


“자, 이걸로 애들 맛있는 거나 장난감 좀 사주라. 에미야.”     


명절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날이면 아버지는 아내에게 상품권이나 그 동안 모았던 돈을 주시며 똑같은 말씀을 한다. 그 모습을 볼때마다 나는 아버지 자신을 위해 좀 쓰라고 말하지만 막무가내다. 그냥 괜찮다고 하며 웃기만 하는 그를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이제 70살이 된 아버지는 43년째 여전히 일을 하는 직장인이다. 평생 월급쟁이로 어머니, 나와 동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이다. 잘 나가는 대기업 직장인에서 IMF 이후에는 가족을 위해 닥치는대로 적은 임금을 받아도 업종을 바꿔가며 우리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셨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당시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었다. 돈 10원도 벌지 못하는 주제에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지원해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공감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번 대들기만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다. 나와 여동생에게 맛있는 과자나 좋은 장난감을 많이 사주면서 본인은 낡은 지갑을 들고 다녔다. 내가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열심히 일하고 받은 노동의 댓가였다.      


늘 직장과 집만을 오가며 평생을 재미없게 살았던 모습을 보며 나는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이 들면서 그를 닮아가는 내 모습에 울컥한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굶지 않고 지금까지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희생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가끔 돈 좀 아낀다고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운 날도 많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나가는 돈이 더 많은 달도 있다. 외벌이라 가끔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 아버지만큼 그들을 잘 지킬 수 있을지 걱정하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래도 아빠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힘을 내어본다. 아버지가 내가 커서 자립할 때까지 지원하고 지켜준 것처럼 나도 커가는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둘째아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잠시 멈추었다. 책을 읽어주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해서 또 아내에게 혼나고 있다. 역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렵고 매순간 전쟁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 사람이 아빠다. 오늘도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같이 응원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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