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호접몽을 뛰어넘어서
중국 기담, 괴담 중 두자춘 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용인 즉,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라고도 하고 수나라 시대라고도 하는 시대 불분명 시기에 두자춘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타고난 성격이 호방하고 물려 받은 재산이 많아 흥청망청 쓰다가 거리에 나앉아 있던 중 범상치 않은 노인을 만나 거듭세번이나 큰 돈을 받고 도움을 받은 채 끝내 인생무상을 깨달아 노인에게 신선이 되는 가르침을 받는 이야기이다. 결과적으로는 이야기의 끝에 두자춘은 끝내 신선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 신선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상상도 못할 고통스런 경험과 과정들이 웬지 영화 매트릭스와 일견 비슷한 부분이 없지 않아 보인다.
먼저 두자춘이 겪는 일련의 시험들을 매트릭스와 비교해보자면,
두자춘이 노인에게 세번의 큰 물질적인 도움을 받아 마침내 속세를 떠나 노인에게 귀의하려 하자 노인은 알약을 건네주며 무슨일이 있어도 어떠한 말도 하지 말라 주의를 준다. 어디에서 많이 본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워쇼스키 자매(당시는 형제였지만)의 영화 곳곳에 보이는 동양문화적 장치, 표현 등을 보고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도 동양고전, 기담, 괴담에도 심취해 두자춘 전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매트릭스에서는 모피어스가 깨어나기 전의 '네오' 인 토마스 앤더슨에게 파란알약과 빨간알약을 주며 가짜의, 가상의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침내 알약을 먹은 두자춘과 토마스 앤더슨(네오)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먼저 두자춘은 그 세상에서 갖은 육체적 고충을 겪을 뿐만아니라 심지어 그 가족에게도 해가 가해지는 과정에도 노인의 당부를 지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마침내 염라대왕에 의해 여자로 환생하였고 다 큰 다음에는 결혼까지 하고 예쁜 자신의 아이까지 낳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감정 중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자신의 남편이 자식에게 가하는 해를 보고난 나머지 노인의 당부를 어기고 말을 내뱉게 되어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결국에는 노인도 탄식을 하며 거의 신선이 될 뻔했는데 안타깝도다 라는 꾸지람과 탄식끝에 신선이 되지 못하고 만다. 반면, 매트릭스에서는 원래의 시나리오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알약을 먹고 진정한 현실세계로 나오는 과정이 간단하기만 한데, 아마도 매트릭스를 두자춘전과 같이 해석한다면 네오가 현실세계로 빠져나오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두자춘 전에서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와 비견될 만한 캐릭터는 노인인데, 노인은 두자춘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는 가상의 세계이고 다들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 세계가 가상의 세계임을 어떠한 방법으로 알아내어 나름의 비법으로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수 있는 자인 것이다. 이를테면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오류프로그램 또는 규격외의 자 라고 불리는 자 일 것이다. 이는 두자춘전에서 알약을 먹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간 두자춘을 괴롭히고 고통을 가한 장군과 그 수하들, 그리고 염라대왕 등의 인물들이 두자춘에게 계속 이름을 물어보며 말을 하라고 다그치는 장면에서 노인의 존재를 알고 '요망한 노인' 이라고 일컫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들은 두자춘이 노인에 의해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왔음을 진즉에 알고 있을 뿐만아니라, 매우 적대시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치 매트릭스의 요원들처럼.
이는 노인의 역할이 마치 모피어스처럼 현실세계로 가상의 인물들을 구출(?)하고 깨닫게 해주어 프로그램의 안정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예컨대 두자춘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장군과 그 수하들, 염라대왕은 가상세계 프로그램을 수호하는 백신과 같은 프로그램이며 프로그램 내 어떤 다른 프로그램이나 캐릭터의 이상반응이 감지되는 경우 이상유무를 판단해서 또는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테스트를 통해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이 지점에서 두자춘이 말을 하고 안하고는 이들 프로그램의 수호자들에게는 중요한 테스트의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보면 인터렉션 즉 상호작용이 가능한가? 아닌가? 라는 점을 테스트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정상적인 프로그램이라면 상호작용이 가능할터인데, 어떠한 물음에도 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폐기 프로그램이라고 간주되므로 재프로그램과정을 거치고 재프로그램에서조차도 상호작용이 없다면 마침내 가상의 세계에서 퇴출되어 비로소 신선과 같이 프로그램에 제약을 받지 않는 노인과 같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네오가 알약을 먹자마자 현실세계의 인공지능 기계에 의해 용도 폐기된 인간일것으로 간주하고 폐기되어 모피어스가 구출 후 현실세계로 데려오는 간단한 시나리오 구조이며 이후의 스토리에 더 치중을 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면, 두자춘은 알약을 먹고 가상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에 더 치중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일련의 스토리를 보면 매트릭스는 두자춘기담과 상당히 유사한 스토리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현대 물리학과 양자역학에서 우리 사는 세상에 대한 의심이 거세지고 점차 우리 세계가 진정하고 유일한 현실세계가 아닐 수 도 있다는 합리적이고 입증가능한 영역에 들어서고 있는 요즘시대에 두자춘 전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조상들도 과학적인 입증은 불가능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상상도 해본다.
일론머스크가 최근에 우리의 세상이 진짜일 확률은 10억분의 1에 해당한다고도 했듯이 어쩌면 우리는 매트릭스의 세상과 두자춘의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