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부강하고 백성들이 배를 두드리며 굶어죽지 않는 세상. 그것으로 족했다. 당시의 이상적인 백성들의 삶은 단지 그것이었다. 물론 위정자들의 백성들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지만 실제 배를 굶주리는 백성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당시 수 백년간 권세를 잡고 나라를 좌지우지 했던 그들 사림들, 단순하게 표현하면 세조시대 훈구세력들을 몰아내고 성종조부터 세력을 이루어 번성했던 사림들의 생각은 도학정치였다. 나라의 근본은 유교사상에 입각한 선후와 질서에 기초한 도학정치를 통해 그들의 이상이 실현만 된다면 모든게 다 잘 될 것이라는 이상, 헛된 꿈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나라가 지금 막 풍전등화의 위기인데도 태연히 헛된 망상을 꿈꾸고 태연자약한 태도만을 보였다.
한 예로 사림(그 당시는 산림이라 불리었지만)의 태두인 우암 송시열은 효종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더랬다. 마음을 함양하고 사치하지 말고 진실로 몸을 먼저 닦고 마음을 잘 다스리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 다 잘될거 라고.
출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물론 산림의 태두이며 조정 대소신료들 모두 송시열을 떠 받들고 삼정승에 제수되었던 송시열에게 정책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가 내놓을 만한 구체적인 해결책이나 답변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대답은 종교인, 성직자 들이 할 법한 방책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저런식의 동문서답, 뜬구름 잡는 식의 답변이 한 두 번도 아니구 늘상 그랬다.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고 말 한마디의 영향이 백성의 실질적인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자의 인식이 이러하다니. 실로 한숨을 넘어 개탄스럽기까지 한 역사였다.
말은 편하다. 행동은 어렵다. 결과는 더욱 참혹하다. 그러나 그들의 저런 한숨어린 말조차 제대로 반박하거나 얼치기 같은 소리라고 말 한마디 내뱉지 못했던 현실이 더욱 참혹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조선조 초기부터 일종의 사회헤게모니를 장악한 결과이다. 그들의 말은 선이다. 누가누가 더 유학 더 나아가서는 주자의 말씀을, 그 이상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따르는가 하는 경쟁만이 그들 내부의 화두였을 뿐, 전반적인 틀 안에서의 그들의 주장은 무조건 옳고 절대선의 반열에 오른 뒤였다. 맞는 말 아닌가? 마음을 가다듬고 백성을 위하며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치를 행하면 자연스럽게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들이 군왕의 업적을 칭솔할 것이라고.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그게 아니다 라고 누가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다 그꼴이 났고 이꼴이 났고 비참한 사단이 발생했다. 임진왜란이 발생했고 호란이 났고 그 고초를 겪었어도 바뀐 것은 없고 그들은 계속해서 망국의 말만 반복했음에도 역시 살아남았다. 상국인 명나라를 받들고 그들의 황제의 죽음에 1년 열두달을 울어재끼고 유학을 숭배하고도 바뀐 것이 없었다. 중국의 꼬붕임을 자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소중화임을 자랑하며 잘못을 반복했다. 그 결과의 끝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우리 역사, 익히 잘 알려진 상고시대를 제외한 우리 역사는 중국과의 투쟁의 역사였다. 중국이 흥하면 한반도가 위태로왔고 일반백성들의 삶은 더 비참했다. 중국이 쇠하면 그나마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살았음에도 비참하고 참혹한 역사는 덜했음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나라의 기틀을 만들고 결국엔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부패했고 헤게모니를 뼀기고 내주었다. 마치 조선조 나라의 기틀을 만들고 부강하게 만든(세종때까지는 그런대로 당시 기준으로 부강한) 그들은 사림들에게 적폐로 몰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들을 제끼고 차지한 자리엔 유학의 최고봉이라고 자부한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사림들이 들어앉았다.
이들의 성리학 이념, 근본, 사상에 대항할 수 있는 어떠한 훌륭한 가치가 없었다. 말해 뭐하겠는가 말이다. 그들은 절대선이며 그 가치는 확고부동한 신념이고 종교였으니 말이다. 달리말해 하나의 종교가 사회전반의 정치, 경제, 사회시스템을 먹어버린 셈이 된 것이다.
말로만 도학정치를 떠들고 자신들의 이익을 내놓지 않으며(그 대동법하나 시행하는 것에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일방적으로 백성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지금세태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