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 새겨진 묘비명
나는 1969년에 태어났다고 들었다. 내 스스로 인지하고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들었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민등록상의 연도는 1970년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는 나의 태어남을 기억하지 못한다.
Song Book은 음악을 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나는 지금까지 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었다. 음악을 듣는 사람 자격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을 위한 노래 모음을 만들고 싶었다. 첫 번째 나의 노래책은 '연대기'다. 노래는 사람들이 삶을 기억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내게도 그런 노래들이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음악이라는 것에 귀를 틔우게 된 때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다. 그 이전에 내게 음악이란 세상에 없던 종류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연대기의 시작이란 면에서, 또 긴 글 모음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나의 탄생 곡쯤은 정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9년에 나온 음반들이나 곡 리스트를 보면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중에서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에피타프(Epitaph)'를 골랐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늘 그 두려움의 원인이 궁금했다.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을 텐데...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 혹은 공포는 두려움에 이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지막 문을 열고 저 세상으로 가는 그 과정의 고통. 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닐까?
사람에게 있어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다.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경우, 결과론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라 가정하면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의가 아닌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결국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지금을 사는 것뿐.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사는 것 자체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묘비명을 쓰고 있다.
Epitaph (by King Crimson): 8분 47초
1969년 10월 12일 발매
킹 크림슨이 1집 앨범인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의 3번째 곡 (LP상으로는 앞면 마지막 곡), 앨범에서의 곡 표기는 Epitaph Including March for no reason and tomorrow and tomorrow로 표기. (구분은 안된다.)
작사: Pete Sinfield
작곡: Robert Fripp, Ian McDonald, Greg Lake, Michael Giles
'에피타프'가 대표적인 곡이긴 하지만, 다른 곡들도 만만치 않게 좋다. 나의 취향 순으로는 Moonchild, I talk to the wind, Epitaph 순. 다만 에피타프의 전주는 감정을 강력하게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처음 볼 때 '헉'소리 나는 앨범 커버는 그야말로 역대급. 가장 예술적인 앨범 커버를 꼽을 때, 대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보면 볼수록 뭔가 빠져 드는 맛이 있다.
언젠가 내가 죽을 때에는 나도 알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어떤 날인지, 어떤 장소인지, 어떤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지... 하지만 죽은 이후에는 그것을 기억할 방법이 없다. 나는 나의 죽음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