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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 was on a July morning

강남이 아직 강남이기 전...

by Roke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은 우연이 아니다. 알고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유들이 있다.

서울 강남에 처음 왔을 때는 집이나 건물 보다는 허허벌판이 더 많았다. 강남에 처음 살았던 집이 휘문 고등학교 바로 맞은 편인데, 당시 학교 정문과 집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도 전학 절차가 제대로 안돼서 한 학기를 지금의 대치동에서 금천구 시흥으로 통학을 했다. 버스 노선이 있었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마 한 학기 통째로 쉬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당시에는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렸던 것 같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시간이지만.... 그러고도 눈 앞에 보이는 학교를 두고 멀리(지금의 일원동)에 있었던 중동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1984년, 나는 중학교 3학년. 그때 처음 팝 음악을 듣게 되었다. 친구가 녹음해 준 카세트 테이프를 집에서 들었는데, 그게 비틀스(The Beatles)의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였다. 빌려준 친구가 어느 노래가 제일 좋으냐고 물었을 때, 나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라고 답했다. 사실 지금 들어도 어느 하나 버릴 곡이 없는 앨범이지만, 당시에는 좀 센 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내 대답을 듣고 그 친구가 두 번째 카세트를 준비해 주었는데, 거기에 유라이어 힙(Uriah Heep)의 July Morning이 있었다. 리스너로서의 내 삶이 시작되던 때였다.


1984년이 가져온 변화는 음악만이 아니다. 태어나서 연례 행사처럼 했던 이사를 (완전히 는 아니지만) 멈추게 되었고, 여자 사람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고, 아파트라는 집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을 구분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강남이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가정하면, 그 속에서 나도 욕망에 물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욕망을 다시 버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완벽하게 버렸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욕망에서 자유로와 졌다고 생각한다.


욕심과 욕망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욕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은 맞다. 아마도 소유욕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든 가져야 직성이 풀렸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 당장'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늘 '언젠가는...'이라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늘 마음 먹은 것은 가질 수 있었다. 비교적 일찍 내 삶에 대해서 10년 플랜을 세우게 된 것도 이런 영향이 컸다.


이랬던 내가 변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에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무언가를 갖겠다는 욕심이 어리석은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것은 소유했다고 착각을 했거나, 잠시 머문 것일 뿐이었다.


아직도 나는 강남에 머물고 있다. 1984년이나 지금이나 강남 안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July Morning (by Uriah Heep): 10분 32초

*1971년 10월 발매

*유라이어 힙의 세 번째 앨범인 'Look ay your self' 앨범의 세 번째 곡.

*작사/작곡: David Byron, Ken Hensley

*무그 신시사이저란 악기가 처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일단 나는 처음 들었으니까 소리가 신기했던 것이지, 지금에야 흔하디 흔한 사운드다. 다만 그 소리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곡은 지금도 많지 않다. 7월 아침이라는 제목 때문에 혼자서 7월 되면 찾아 듣곤 했는데, 불가리아에서는 6월 30일 밤에 검은 바다 해안에 모여 7월 1일의 일출을 보는 풍습이 있어, 모인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종종 불렀다는 설이 있다.

* 오리지널 앨범 커버는 가운데 네모가 반사되는 재질로 되어 있다. 앨범 제목 그대로 나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이 앨범을 LP나 CD로 가져 본 적이 없다. 그 친구의 카세트 테이프를 꽤 오래 보관했었다.


그저 나의 개인 사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내가 강남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강남이 강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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