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들'을 버릴 때다

Finding true Vivian Maier

by Roke

'Finding Vivian Maier(2013)'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뒤늦게 알게 되어 찾아보았는데,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잘 만든 다큐멘터리라는 점은 논외로 치고,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존재는 그동안 내 머리 속에 깊숙이 숨겨져 있던 어떤 생각을 쑥 뽑아 올렸다.


비비안 마이어의 이름은 매거진 '책'의 2018년 1.2월 합본호를 통해서였다. 대게 그녀에 대한 수식어는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 사진작가', '수수께끼 사진작가'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이 대중에게 공개된 이후부터는 '천재 사진작가'라는 찬사가 따라붙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모든 수식어가 불편하다. 특히나 요즘에 그 빈도가 너무나 빈번해진 '천재'라는 단어는 매우 매우 싫다.


'천재'라고 명칭을 부여한 이유는 세상이 그녀를 기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의심해 본다. 이를테면 평생 '유모' 같은 미천한 일을 하던 사람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비록 생전에 공개되지 않아서 몰랐지만 그녀는 천재가 분명해. 왜 천재 사진작가가 '유모'일을 해야 했을까? 그러니까 이건 굉장히 미스터리한 일이야...' 같은 이야기.


같은 이유로 나는 '역사'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역사, 전통, 혹은 문화재라고 부르는 것들은 거의 모두 왕이나 권력자들의 것들이다. 역사는 '권력사'라고 해야 하며, 전통이란 '권력자들의 생활 습관'이고, 문화재는 '권력자들의 유물'이라고 해야 한다. 아마도 역사 학자는 이런 의견에 대해 과격할 뿐 아니라 한참 모르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권력자 대비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만약 인간 사회의 발전이 권력의 분산 확장(민주주의로의 발전)으로 나아간다고 하면 역사 역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비안 마이어는 유모였고, 사진 찍는 일을 좋아했다. 그리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왜 사진을 찍었는지, 왜 유모란 직업을 선택했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가 그녀의 삶이었고,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으니까.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은 휴대폰을 든 또 다른 비비안 마이어가 존재한다. 거리 청소를 하고 다른 시간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앞으로의 역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어떤 재능이 그 한 사람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애플이나 아이폰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나는 '그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결국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가설을 세워본다. 위대한 천재들.... 그들의 성취와 성과는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재능이 그들의 삶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의문이 많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것.

그녀가 찍은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같은 사람들이었다.

그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슬픔과 분노에 관한 앨범 커버 (1998, 이소라)

Praise (by 이소라): 4분 37초

작사/작곡: 이소라/신대철

1998년 발매된 이소라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마지막곡이다. 발매 당시 이소라가 록 음악을 했다고 해서 록 동호회에서는 엄청 반겼던 앨범이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공연에서 요청이 많았던 록 풍의 노래는 곡은 2집의 '화'였다고..... 그리고 이소라 본인이 그런 노래들은 힘들어서 공연 시에 잘 안부른다는...얘기가 있었다.

굳이 이소라에 대해서 얘기할 꺼리는 없다. 각자가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괜찮으니까. 다만 다른 노래 제쳐 두고 왜 이 곡이냐고 한다면, 98%의 취향의 문제와 함께 2% 가사(제목에 표시한 그대로) 때문이다.

몇몇 뮤지션의 어떤 앨범들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는 경우가 많다. 단점은 중간에 다른 생각하다 보면 노래가 다 끝나 버린다는 것이다.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오히려 소홀하게 대하는 관계를 보는 것 같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이소라 같은 경우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손이 덜 가는 그런 무책임한 측면도 있다.

어느 술자리에서 열변을 토한 것처럼... 이소라는 해외로 수출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