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에는 속도가 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다만 여유롭다.
대답을 서두르지 않는 쪽,
결론을 미루는 용기가 있는 쪽,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쪽에
다정함은 머문다.
나는 오랫동안 그 속도를 견디지 못했다.
느려지면 뒤처질 것 같았고,
멈추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동안 나의 삶은 늘 빠른 쪽을 선택해 왔다.
결정은 신속해야 했고,
감정은 관리되어야 했으며,
흔들림은 최소화되어야 했다.
멈추지 않는 사람은 신뢰받았고,
속도를 유지하는 일은 능력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이 속도가 나에게도 맞는지.
상담실에서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이유를 먼저 설명하고,
감정을 정리해 제출하듯 말한다.
그 속도는 성실함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불안에 가깝다.
멈추면 감당하지 못할 무언가가 올라올까 봐
계속 앞으로만 가는 속도다.
어느 날 한 내담자가 말했다.
“생각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때 알았다.
다정함은 바로 저런 속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 역시 내 삶에
그 속도를 허락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결정을 하루 미루는 일,
당장 답을 내리지 않는 선택,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고 인정하는 일.
그 선택들은 겉으로 보기엔 사소했지만,
내 안에서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음이 비로소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멈추는 일을 패배처럼 여겼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계속 밀어붙이는 속도보다
나를 놓치지 않는 속도가 훨씬 오래 간다는 것을.
다정함이 머무는 속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성과로 기록되지도 않는다.
대신 작은 신호로 남는다.
호흡이 깊어지는 순간, 말이 느려지는 장면,
스스로를 재촉하던 문장이 사라진 자리.
요즘의 나는 이전보다 천천히 산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나를 자주 만난다.
불안도, 망설임도 함께 함께 간다.
다정함은 그것들을 밀어내지 않고
같이 갈 수 있도록 속도를 맞춘다.
다정함이 머무는 속도는
결국 나를 안정감있게 하는 속도다.
더 멀리 가기 위한 속도가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속도.
그리고 오늘도 나는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은 얼마나 나를 배려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