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쉬는 것, 망설이는 것, 모른다고 말하는 것,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건네던 말들이, 나에게만은 늘 보류되었다.
그 보류에는 언제나 조건이 붙어 있었다.
조금 더 버티고 나서,
조금 더 잘해낸 뒤에,
조금 더 괜찮아진 다음에.
하지만 그 조건은 좀처럼 충족되지 않았다.
나는 늘 ‘아직은 아닌’ 상태로 살아왔다.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부와는 조금 다르다.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계속 미루는 일에 가깝다.
“지금은 아니야. 아직은.”
그 말은 나를 포기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쉬지 못하게 했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사람은 말을 꺼내기 전에 늘 웃음을 먼저 붙였다.
“별일은 아닌데요.”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면 좀 그렇죠?”
그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태도를
몸에 익힌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는 잠시 멈췄다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끄덕임 속에서 나는 오래된 긴장을 보았다.
그 장면은 나의 한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5남매 중 막내였다.
위에는 늘 바쁘고, 책임지고, 애쓰는 형제들이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괜찮은 아이’가 되는 쪽을 택했다.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
더 요구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필요를 뒤로 미루는 법을 먼저 배웠다.
아들러는 가족 안에서의 위치가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막내는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교 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증명하려 애쓰는 존재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나는 늘 조금 더 참는 쪽을, 조금 더 잘해내는 쪽을 선택하며
나 자신에게 허락을 미루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아주 사소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불을 켜지도 않은 채 잠시 서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기다리게 하고 있을까.
그날 나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그게 내가 나에게 허락한 첫 번째 일이었다.
상담실로 돌아오면 나는 그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
“괜찮아지면 쉬려고요.”
“조금만 더 지나면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서둘러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지금은 어떤 걸 허락하지 않고 계세요?”
나 역시 그 질문을 나에게 계속 던지고 있다.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다.
어떤 날은 여전히 나를 몰아붙이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허락은 나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오래 가게 한다는 것을.
다정함은 어쩌면 허락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쉬어도 된다는 허락,
모르겠다고 말해도 된다는 허락,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다는 허락.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들.
그 목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목록을 다시 쓰기 시작한 이후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덜 엄격해졌고,
조금 더 오래 숨 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