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왔는데, 문득 숨이 막히는 날이 있다.
문제는 없고 삶은 무너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지친다.
이유를 묻기엔 애매하고, 쉬자니 스스로에게 허락이 나지 않는 상태.
나는 그런 날들을 오래 견뎌왔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 답이 어쩌면 ‘다정함’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요즘 들어 특히 ‘다정’이라는 말이 좋다.
정이 많고 마음이 깊으며 따뜻하다는 뜻.
짧은 설명이지만, 그 말이 남기는 온도는 오래 간다.
사람들은 다정함을 흔히 타고난 성격처럼 생각한다.
부드럽고, 말을 곱게 하고,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태도.
하지만 내가 알게 된 다정함은 조금 달랐다.
친절이 무언가를 해주려는 마음이라면,
다정함은 굳이 해결하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머무르는 태도에 가깝다.
판단하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
다정함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다.
상담에서 몸의 감각은 종종 마음보다 먼저 신호를 보낸다.
숨이 얕아지거나, 어깨가 굳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순간들.
이런 감각들은 문제가 생겼다는 경고라기보다, 이미 오래 애써왔다는 흔적에 가깝다.
몸의 감각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그것을 고치려 하거나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다’고 잠시 허락하는 일이다.
감각은 해석보다 먼저 존재하고, 그 자체로 존중받을 때 비로소 마음도 따라 느슨해진다.
나는 오랫동안 이 다정함을 다른 사람에게만 썼다.
상담실에서는 쉽게 건네던 말, “그럴 수 있어요”, “지금은 이만하면 됐어요”를
정작 나 자신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나에게만은 늘 더 잘해야 했고, 더 견뎌야 했다.
그날은 특별한 일이 없던 날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멈출 수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날의 고요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숨이 조금 깊어지고, 어깨의 힘이 아주 조금 풀리는 순간을.
상담실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문제는 없어요. 그냥 좀 힘들 뿐이에요.”
그 말 뒤에는 대개 자기에게만 유난히 엄격했던 시간이 숨어 있다.
며칠 전, 한 내담자가 조용히 물었다.
“제가 이렇게까지 애써야 할 이유가 있나요?”
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잠시 함께 앉아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오래전의 나를 보았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다정함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지금의 상태를 고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는 선택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상담실에서 누군가에게 건네던 그 태도를
나 자신에게 적용해보았다.
다정함은 나를 느슨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오래 살아가게 했다.
그래서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멈춤에서.
내가 처음으로 나에게 다정해지기 시작한 날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